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집으로 가는 길 /띠너꺼 헨드릭스 /사계절

책 속에서 만난, 먼 나라의 그들

'문이가 태어났을 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어요/전쟁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모든 곳을 부숴 버렸지요/마침내 먹을 것이 다 떨어졌어요. 아빠는 대나무로 작은 상자를 만드셨어요. 바다 저 멀리로 문이를 떠나보내려는 것이었지요. 아빠는 사랑하는 아기 문이를 상자 안에 소중히 담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빠와 엄마는 아기를 바다에 띄워 보내고, 먼 바다 저편 어떤 부부가 눈이 작은 아이 문이를 데려다 키우게 된다. 문이가 자란 어느 날 문이의 새 아빠와 엄마는 문이를 데려온 바닷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문이는 아픔 끝에 바다 저쪽 아빠와 엄마도 문이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어릴 때 사랑한 물건들을 작은 대나무 상자 안에 넣어 바다 저 멀리로 띄워 보낸다. 마루벌에서 출판한 이 작은 그림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 벨기에의 작가 라스칼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 책 속 문이가 한국의 아이임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 그림책이나 아동'청소년 책을 읽다가 뜻밖의 주인공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문이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 기욤 게로의 『꼬마 이방인』에도 두 살 때 한국에서 입양 온 귀여운 소녀 미르띠유가 나온다. 미르띠유의 한국식 이름은 '이훈희'였다. 미르띠유는 조국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했기 때문에 이곳으로 피란 오게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공주님이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한다. 가끔 사람들이 "미르띠유 공주님,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니?"라고 놀리면 미르띠유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야만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어서 돌아갈 수 없어"라고 대답한다.

이 책은 미르띠유의 남자친구 모모 가족이 프랑스로 불법이민을 와서 온갖 차별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며 언제 추방당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야기이다. 프랑스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출판사의 광고 문구처럼 프랑스의 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에서 우리는 예기치 않게 한국에서 '버림받은'소녀가 낯선 외국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성장보고서를 읽게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 작가 띠너꺼 헨드릭스의 『집으로 가는 길』에도 비슷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때 사회복지사였으며 입양아 중개소에서도 일했다는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았는지, 한국에서 입양된 소녀 인따를 성장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인따는 부모의 사랑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라는 평범한 소녀였는데, 사춘기가 된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외모가 가족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인따의 방황이 시작되었고, 자식을 더 이상 낳지 못해 인따를 입양한 양부모는 인따가 태어난 나라로 아이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어렵게 인따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만나게 되는데, 친어머니는 성폭행으로 인따를 임신하여 출산하고 입양시킨 다음 한평생 남모르는 마음앓이를 하며 살아오던 참이었다. 인따는 친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양부모의 자신에 대한 사랑과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며, 한결 성장한 모습으로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이 책에는 사춘기 소녀 인따의 방황과 그것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는 양부모의 심리가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물론 외국 작가인지라 한국의 어머니가 인따를 낳을 당시의 상황과 그 후의 삶을 묘사한 부분은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점이 있다.

외국으로 입양 간 한국 아이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고 싶어하고, 조국에 와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는 언론이나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외국 작가들이 쓴 책을 읽다가 우연히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는 느낌은 또 남다르다.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혼란을 겪으며 먼 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수많은 문이와 미르띠유와 인따에게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이방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키우는 외국인들에게 느끼는 이 야릇한 감정은 또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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