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백남준(1932~2006)을 모르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백남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부분 그를 TV 브라운관을 활용한 미디어 조각 작가로만 기억하고 있다. 백남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를 가봐야 한다.
▲백남준 아트센터, 용인 관광에 불붙이다.
경기도 백남준아트센터의 역사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도지사는 백남준에게 미술관 건립을 제안했고 백남준은 이곳을 직접 방문해 주변 산세를 둘러본 후 직접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이름 지었다. 경기도와 경기도문화재단이 2007년에 착공해 2008년 10월 문을 연 백남준아트센터는 올해 10월 말 현재 16만 명이 다녀갔다. 연말까지 하면 예상 관람객은 19만 명. 지난해 12만 명에 비교하면 60%나 급증했다. 에버랜드와 민속촌이 있는 용인에는 원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백남준 아트센터가 더욱 많은 발길을 몰리게 했다. 경기도는 앞으로 이곳을 인근의 경기도 박물관, 현재 건립 중인 어린이 박물관 등과 엮어 '뮤지엄 파크'로 관광 벨트화할 계획이다.
경기도 용인시는 최근 백남준아트센터 주변에 '백남준 디자인 거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백남준 거리는 1.5㎞ 구간에 1만5천㎡ 규모로 조성되며 80억원을 들여 벽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갤러리 회랑, 미디어 벽천, 피아노길, 소리영상 상자, 열린 광장, 예술체험 어린이공원, 근린공원 등을 조성한다는 것. '백남준'이라는 브랜드를 십분 활용하고자 하는 용인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백남준 예술의 총합
백남준 아트센터의 소장품은 서신, 편지, 포스터의 드로잉 등 자료까지 포함하면 2천여 점이 넘고, 이 가운데 비디오 조각 작품은 2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1층 백남준 상설전시관에 들어서면 괴상한 모양의 로봇을 만날 수 있다. 잠수부 헬멧을 쓰고 망토를 두른 채 삼천리표 국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 로봇은 TV를 한가득 쌓아 등에 지고 있다. 이 작품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 '징기스칸의 귀환'. '울란바토르에서 베니스까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석유 고갈 시대에 사람의 아이디어로 움직이는 '정주 유목민'의 초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스스로를 서양에 침범해오는 동양인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특히 이 잠수부의 헬멧은 인상적이다. 징기스칸의 존재를 야만적 정복자가 아닌 '깊은 사유의 잠수자'로 바꾸어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견고하게 쌓여있는 모더니즘에 자장을 일으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작품 'TV 정원' 전시장에는 유쾌한 음악이 흐른다. 전시장은 나무가 우거진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갖가지 식물이 심겨진 이 정원에는 여기저기 TV가 흩어져 있다. TV에서는 영상 작품과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TV 정원'은 백남준의 유쾌한 상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남준에게 TV는 중요한 상징이다. 당시 TV는 커뮤니케이션과 기술의 집약체였다. 그는 자신의 실험적인 TV와 비디오 작품이 새로운 인식론적 출구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이를 위해 그는 1961년부터 2년간 오직 전자공학에 관한 책만 공부하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는 초특급 비밀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1만5천볼트를 사용하던 중 죽을 뻔했던 적도 있다고 하니 그의 확신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TV 모니터 앞에서 마이크를 두드리거나 소리를 내면 화면에 반응이 나타나는 작품 '참여 TV'는 관람객들이 특히 흥미로워했다. 관람객 조희란(24) 씨는 "미술관이라 엄숙하고 조용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고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는 백남준의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온다. 백남준은 그 작품에 대해 "일방적인 국가 주도의 메시지에 반격하는 TV를 만들었다"면서 일방통행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벗어던지는 통쾌함을 선보였다.
▲백남준 예술의 바탕은 철학
2층에서는 그의 선(仙)적인 퍼포먼스를 만날 수 있다. 작은 불상이 세워져 있고 이를 비디오가 비춘다. 실제 불상은 TV 모니터에 나오는 자신의 허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장면을 또 다른 비디오가 비추고 있다. 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는 "자신을 반추하는 선불교 사상을 보여주는 철학적 작품"이라면서 "자신에 대한 성찰, 기술 발달로 인한 감시 체계 등의 의미를 내포하면서 당시 서양 현대미술계에서 걸작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둘러본 정윤아(22) 씨는 "백남준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는데 미술관을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평론가 아카사와 겐페어는 인터뷰 영상에서 백남준에 대해 "대중들에게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창조와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면서 "삶을 예찬한 유쾌한 광대"라고 평했다.
관객들은 사진 자료와 전자부품, 음악 자료, 인터뷰 영상 등을 통해 젊은 날의 백남준을 만날 수 있다. 서구 중심의 예술 세계 한복판에서 유목민적인 주체 의식을 가졌던 한 한국인 예술가 말이다. 백남준이 직접 이름 붙인 대로,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인 것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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