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할머니 말씀에서 찾는 한국인의 세계관

어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구술생애사를 전공하는 분이 페이스북의 쪽지로 질문을 보내왔다. 시골 할머니들도 세계관이 있는데 그들 고유의 세계관을 무엇이라고 자리매김하는 것이 좋은가 물었다. 이를테면, 할머니들이 "젊을 때 힘들면 노후에 낫다는 생각"을 하거나, "부모가 잘되면 자식이 안 되고, 자식이 잘되면 부모가 힘든 것이 이치"라고 여기는 것을 딱부러지게 어떤 세계관으로 규정해야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받고 아주 놀랐다. 우리 문화에 관한 대단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분이자, 시골 할머니들의 세계관을 일정한 수준으로 포착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할머니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도 세계관으로까지 연결시키지 않는다. 그냥 노인들 말씀 수준으로 들어 넘긴다.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 해명을 명쾌하게 해 두었을 터이니, 찾아서 인용해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면 창조적 학문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연구자 스스로 조사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세계관을 설득력 있는 용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창조적 연구자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답하고 며칠 전 민속학자대회에서 총평한 내용 일부를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터라, 그 글을 참고하라고 했다. 총평의 제일 서두 부분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발표자의 발표와 토론 내용을 들으면 그것들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럼 누구의 내용이 옳은가? 가장 하수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와 친소 관계에 따라 발표나 토론이 옳다고 한다. 다음 하수는 내용에 따라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그것이 옳다고 여긴다. 상수 가운데 하수는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학문적 성찰을 한다. '나도 발표자나 토론자와 같은 수준의 주장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상수 가운데 상수는 성찰을 넘어서서 발표와 토론의 주장과 다른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모색하고 독창적 연구 논제를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기까지 가지 않는다. 그저 누가 더 잘 발표하고 토론했는가 하는 평가 수준에 머물기 일쑤이다. 전형적인 교사적 태도이다.

이러한 학문 행태를 더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하수 중의 하수는 '종속적 연구자', 하수 중의 상수는 '교사적 태도의 연구자', 상수 중의 하수는 '성찰적 연구자', 상수 중의 상수는 '창조적 연구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총평 과정에서 이보다 더 문제인 연구자를 거론했다. 이른바 회전의자형 학자들이다. 자리만 차지한 채 후학들의 진로를 막고 있는 이들이다. 자기는 어떤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이러저러하게 연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지시나 하는데, 군림하며 명령이나 내리면 학자들이 모두 따르리라 착각하는 이들이다. 더 엉뚱한 자는 학술대회 토론자로 나서서 학문 연구가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고 돈이 되는 일을 하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자들은 학자라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시인들의 창작시 발표회에 나타나서 일자리가 되고 돈이 되는 시를 쓰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인이라면 감히 이따위 천박한 주장은 하지 않는다. 학자도 학술 논문발표회에 나타나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자기 모욕이자 학문 모독이다. 따라서 학자라면 최소한 성찰적 연구자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 창조적 연구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는데 우리 학계의 가장 문제가 회전의자형 학자들이 큰소리치고 있는 현실이다. 창조적 연구자는 남의 연구를 좇지 않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끌어안고 뒹구는 가운데 독자적 해결의 길을 탐색한다. 이와 반대로, 외국 학자들이 그들의 사회를 연구한 내용을 읽고 퍼나르며 우리 학문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남의 지식을 끌어다가 자기 연구의 본론으로 삼으면서 그 지식으로 국내 학자들의 학문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학자들은 더 큰 문제이다. 한마디로 참고문헌 목록에 있는 제국주의적 학문을 등에 업고 자국 학문을 식민화하며 으스대는 종속적 연구자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제국주의에 복속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러므로 외국 이론에 휘둘리지 않은 채 할머니 말씀에서 한국인의 세계관을 발견하고 학술적으로 정립하려는 사회학도의 질문에서 우리 학문의 희망을 읽는다.

임재해(안동대 교수·민속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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