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사는 14세 여중학생이 '나만의 동반자:10대들의 모임' 카페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초등학생 여동생이 가출했는데 아이들이 주로 갈 만한 곳을 수소문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여동생이 이틀째 집을 나가 찾아다니고 있다"며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는데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가출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가출 청소년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이들을 '신(新)가출세대'라고 부르고 있다.
가정불화나 부모와의 갈등으로 가출하는 초등학생이 급증하고 있고, 이들은 또래끼리 무리지어 다니며 생계형 범죄나 성매매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신가출세대'의 실태와 대책을 짚어본다.
◆급증하는 가출 청소년, 낮아지는 가출 연령
지난 6월 대구 지역 가출청소년쉼터에 입소한 김태환(가명·12) 군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다. 또래 가출 청소년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고, 형사 미성년(만 14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이곳에 입소했다.
5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의 잦은 꾸지람과 폭언에 시달리던 김 군은 지난 5월 5일 처음 가출했다. 집을 나온 김 군이 의지할 곳은 '친구'뿐이었다. 가출 첫날 같은 반 친구 2명을 꼬드겨 함께 두류공원에서 하루를 보냈고, 생활비 마련을 위한 생계형 범죄에 빠져들었다. 김 군은 "초등학생이라서 가출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가출한 또래 아이들이 여럿"이라며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여성가족부가 전국 79개 청소년 쉼터 이용 청소년 5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 가출 청소년 및 청소년쉼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들의 첫 가출 평균 나이는 남자 13.3세, 여자 13.8세로 나타났다. 특히 여자 가출자는 2007년 14.5세에서 1살 가까이 낮아졌다.
대구시청소년쉼터 김경은 간사는 "쉼터에 들어오는 고교생들은 확연히 준 반면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1·2학년생들은 늘어나고 있다"며 "사춘기가 빨라지고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가정환경 역시 상대적으로 일찍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찰 역시 어린 가출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가출 청소년 신고 건수는 726건으로 벌써 지난해 전체 신고건수 721건을 넘어섰다. 2005년(557건)과 비교하면 30%나 증가한 수치로, 가출 청소년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성매매의 늪에 빠진 아이들
지난달 27일 오후 10시 대구 남구 PC방에서 만난 서지혜(가명·14) 양은 거리낌없이 성매매를 했다. 가출 3개월째라는 서 양은 인터넷 채팅방에 'ㅈㄱㅁㄴ'(조건만남)이라는 방을 열어 두고 있었다. 서 양은 "늘 어른들의 쪽지가 몰려든다"며 "부산에서 원정 온 아저씨까지 있었다"고 했다.
서 양은 가출 청소년 성매매가 점점 집단화하고 있다고 했다. 서 양같이 홀로 성매매를 하는 '프리랜서'보다 가출 여학생들끼리 '팸'(떼)을 지어 성매매에 나선다는 것. 서 양은 "생계비를 고민하는 또래 여학생들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성매매"라며 "아이들은 돈을 받기보다 밥과 잠자리를 제공받는 대가로 성매매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1년 전 가출을 경험했던 이혜미(가명·15) 양도 "요즘은 무조건 가출하지 않고 일단 함께할 친구들을 미리 정한 다음 가출 생활을 시작한다"며 "그러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순번을 정해 성매매에 빠져든다"고 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7, 8월 성매매 경험이 있는 10대 여학생 43명 중 53%(23명)가 가출 후 성매매의 늪에 빠졌다. 이곳 성윤숙 연구위원은 "가출 여학생들은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수가 성매매를 하게 된다"고 했다.
◆돌아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
가출 청소년들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가출 예방 프로그램 및 보호 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가출 청소년들의 '귀가'에 무관심한 가족 해체 상황이 심화되면서 '조기 가출'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11시 대구 중구 동성로 2·28공원. 일주일째 집을 나와 있다는 김덕진(가명·15) 군은 가출 얘기에 갑자기 흥분했다. 김 군은 "집을 째고(가출하고) 친구집에서 며칠씩 지내도 부모님 연락이 없다"고 했다. 김 군의 친구들은 "지난번 가출했을 땐 부모님이 친구를 찾기는커녕 '넌 아들도 아니다'며 전화로 마구 욕하더라"고 말했다.
달서구청소년쉼터 김정은 간사는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부모가 직접 쉼터로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는 경우가 절반 가까이 됐다"며 "지금은 10명에 1명 보기도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부모가 안 찾으니 아이들 스스로 집에 돌아가고 싶겠느냐고 했다.
지난달 22일 여성가족부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전국 쉼터 청소년 553명 중 86%가 귀가를 거부했다.
대구시청소년쉼터 손병근 팀장은 "가출 청소년들의 귀가는 부모 손에 달려 있다"며 "부모의 의지만 있다면 언제라도 아이는 가정으로 돌아가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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