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別)주부전, 신주부시대, 슈퍼맘, 스키니맘, 원더우먼, 아줌마의 힘 등.'
바야흐로 여성 시대다. 그것도 기혼 여성들의 전성 시대라 할 만하다. 여성 시대는 전성기를 지나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 '여성은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주부들이 집안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 각종 여가생활, 봉사활동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주부(아줌마) 담론을 펼쳐가는 서울시립대학교 이숙경 강사는 대한민국 주부로 대표되는 아줌마의 이미지가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강사는 "그동안 대한민국 아줌마의 이미지는 교양 없고, 이기적이고, 성적 매력이 없는 여성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 축으로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과 역사를 가르치는 버나드 르완 교수는 최근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보냈다. 제목은 '아줌마(주부), 21세기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르완 교수는 가정, 노동, 정치 세 수준으로 나누어 아줌마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아줌마, 특히 40~60대 아줌마들이 수많은 공적, 사적 환경에서 직접적이고 개방된 삶을 사는 것을 보았다"며 "가정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일과 및 여가 활용 면에서 젊은 남녀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만개한 신주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신주부, '바쁘다 바빠'
지역의 주부들은 전국의 신주부 열풍의 선두주자다. 각 연령대별로 다양한 모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임 성격에 따라 나이를 뛰어넘는다. 한편으론 지역의 어두운 곳을 돌며 봉사하는 단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구 수성구의 주부 등 160여 명으로 구성된 '수성 주민광장'은 높은 교육열에 가려져 있는 이 지역 저소득가정 학생들을 돌보기 위해 3년 전 시작된 모임이다. 이영희(43) 집행위원장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자녀교육 문제에 있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이웃이 많아 함께 '교육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이 모임은 또 매월 약간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각종 도서를 구입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나눠주고 있고, 시각장애 아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책도 읽어준다. 동화작가도 가끔씩 초청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좋은 행사다.
대구시 중구 동인동 4가에 위치한 '함께하는 주부모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40~60대 주부가 주축이 된 이 모임은 나이 든 주부들이 많은 만큼 삶의 질 향상과 주부들의 힘을 모아서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사)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들의 모임 대구시지회(회장 서영숙)의 경우 19개 지회, 3만4천여 명의 회원이 우리 농산물 지킴이 활동, 어린이 농촌문화 체험학교 개최, 농촌 일손돕기, 달성공원 효도급식 등 매년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부들이 주축이 돼 자치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는 모임들도 있다. 북구의 '감나무골 새터공동체'는 특히 교육·환경 분야 활동에 집중하고 있고, 달서구의 '성서공동체 FM'은 외국인 노동자 권익을 위한 활동에 신이 나 있다.
이 밖에도 경제적·시간적 여력이 있는 주부들은 골프나 해외여행, 트레킹, 스킨스쿠버, 승마, 경비행기 등 고급 레포츠에 시간을 할애해 배우면서 서서히 전문 레포츠 신주부로 거듭나고 있기도 하다.
◆신주부, '문화·예술의 지형을 바꾼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는 오페라 교실이 개설돼 있다. 교실의 주인공은 단연 주부. 주부들이 자체적으로 오페라 DVD 감상반을 운영하고 있는 것. 이들 주부들은 브런치(Brunch, 아침 겸 점심식사)를 즐기면서 '살로메' '나비부인' '시카고' 등 유명 오페라를 DVD로 보면서 문화 주부로 맹활약하고 있고, 각자 자신만의 감상 포인트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 문화 주부는 지금 주변 친구들의 '문화 주부 만들기'에도 여념이 없다. 문화 주부들의 내공은 벌써 5년째. 매월 한번씩 모여서 오페라 감상 모임을 갖는다. 5년 동안 이 강좌를 거쳐간 수강생은 500여 명. 이 중 95%는 주부들이다. 이들은 오페라 교실을 끝낸 뒤에도 커피숍에서 '오페라 수다'를 몇 시간씩 이어가는 등 문화적 욕구가 끝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대구문화예술회관의 '박 관장의 음악 이야기'와 2007년부터 시작한 수성아트피아의 '마티네 콘서트' 등도 주부들을 위한 음악 콘서트. 이들 콘서트는 콘서트 때마다 주부들로 만원 사례를 빚는 등 대구의 대표적인 '주부 콘서트'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대백프라자의 '브런치오페라' 역시 주부 관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5장의 음반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박강수의 라이브 콘서트 경우 전문 공연장이 아닌 백화점 공연장에서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주부들로 만원 사례를 빚기도 했다. 백화점 측은 문화 주부들이 의외로 많다고 판단해 올해부터는 공연 수준을 몇 단계나 업그레이드시켰다.
유명 뮤지컬 배우는 팬클럽이 있기 마련. 하지만 팬클럽의 주축은 단연 문화 주부들. 현재 대구에서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의 여주인공인 크리스틴 역의 김소현의 경우 지역에 소규모 팬 클럽이 여럿 있지만 주부 모임이 가장 적극적이다. 이들 주부는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김소현의 다른 공연을 보고 내려올 만큼 열성적이다. 뮤지컬 배우로 유명한 남경주, 최정원 등도 대구에 주부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브런치오페라는 서울뿐 아니라 대구에도 정착 단계에 있다. 원피스와 샌들 차림의 주부들이 11시 브런치오페라의 80%에 가까운 관객이다. 이로 인해 오페라나 뮤지컬에 대한 인식도 고급 문화에서 주부 중심의 대중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문화 욕구가 강한 신주부들이 이끄는 새 트렌드로 당당히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신주부, '더 생길수록 좋아'
대구경북연구원은 최근 '여성중심 지역모임'이란 주제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현재 대구에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모인 순수한 풀뿌리 모임은 20여 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파악되지 않은 소규모 모임은 이보다 훨씬 많다. 대부분 자생적으로 생겨났고, 매월 쌈짓돈을 모아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연구원은 매달 5천~1만원씩 내는 회비로는 사무실 임차료를 내기에도 빠듯한 실정이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미원 부연구위원은 "주부 등 여성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직면한 현안에 대해 더욱 민감하고 해결책 또한 구체적"이라며 "지자체별로 모임에 대한 평가를 해 사무실을 무료로 임대해 주거나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해 주는 등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부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한 남성 사진작가가 '주부전'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으며, 지난해 추석 즈음엔 한국여성민우회와 여성신문사의 신주부 캠페인 추진본부에서 '명절문화 바꾸기'운동을 펼쳤다. TV나 라디오, 연극무대에도 지속적으로 '주부'(아줌마)를 대상으로 한 공연들이 올려지고 있다.
인터넷 통신과 주부 동호회, 여성학 동호회 등 주부들의 모임이 보다 구체화, 전문화되고 있는 추세다. 여성신문 산하 신주부캠페인 추진본부는 '아줌마 기 살리기'라는 대회도 열었으며, 가수 양희은은 '아줌마를 위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수성 주민광장 이영희 집행위원장은 "미시족, 사모님, 엄마, 이모, 여자 교수, 여자 장관, 애 엄마, 마누라 등을 통칭하는 것이 주부다.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더욱 생기가 넘치도록 하는 것은 주부의 힘이자 이들의 활동력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신주부 개념=기혼의 전업·취업을 불문하고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여자 어른을 칭한다. 한때는 성인여성을 하대하는 개념으로 '아줌마'라고 불렸지만 아줌마들의 저항 문화가 활성화되고 정치세력화 되면서 변화의 상징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신주부들의 활약은 계속 펼쳐지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