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운문서 화악까지] <45>'청룡분맥' 혹은 '대구산맥'

'비슬∼앞산' 20㎞ 능선…880m 닭지봉 가장 높아

닭지봉능선 분기점인 687m봉서 바라본 대구산맥. 용연사 구간을 막 지난 산줄기가 멀리 청룡산을 향해 굽이쳐 가는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왼편 가까이로 펼쳐진 골은 화원읍 본리리 계곡이다.
닭지봉능선 분기점인 687m봉서 바라본 대구산맥. 용연사 구간을 막 지난 산줄기가 멀리 청룡산을 향해 굽이쳐 가는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왼편 가까이로 펼쳐진 골은 화원읍 본리리 계곡이다.

이제 비슬산 본체에 들어설 차례이지만, 그 전에 '청룡지맥'이라 불려온 다른 산줄기부터 하나 봐 두는 게 좋을 듯하다. 비슬기맥 마지막 구간인 청산벌~비슬산 사이 10여㎞는 저 산줄기와 어울리고서야 40리 길이라는 가창 '정대계곡'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청룡지맥'은 대구 앞산순환로까지의 길이만도 20㎞에 달하는 큰 산줄기다.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어서, 두류산·와룡산을 거쳐 강창교 북편까지 이어가며 대구 시가지 수계를 둘로 좍 갈라놓는다. 수많은 가지산줄기들이 분기해 나가 신천 서쪽 시가지 대부분의 지형을 결정하기까지 한다. 대구라는 도시에는 더 이상 중요한 지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산줄기는 이름부터 재고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흔히 '청룡지맥'이라 하지만 그건 청룡산을 거쳐 북으로 뻗어간다는 점만 고려해 '신산경표'(2004년)라는 개인저술이 붙인 물리적 명칭에 불과하다. 이 시리즈(2회)가 제시한 '비슬기맥 청룡분맥'이란 이름도 그 점에선 마찬가지다. 인문학적 의미까지 고려해 대구의 입장에서 절대평가한다면, 이 산줄기 이름은 적어도 '대구산맥' 정도는 돼야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대구산맥'은 비슬산 정상에서 북으로 400여m 더 간 지점에 솟은 마지막 1,052m봉서 출발한다. 그리고는 출발과 동시에 비슬기맥과의 사이에 '마내미골'을 형성한다. 비슬산 최고봉(1,083m) 북동(北東) 비탈서 시작되는 가창호 최상류 구간이다. 일여덟 가구나 살던 '도토구지'마을('정구지덤' 북편)이 있었다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마을 터 부근에 있는 두 개의 '수리덤'과 해맑은 '무당웅덩이' 등등으로 풍광도 빼어나다. 그런데도 이 골짜기를 아는 외지인은 거의 없다. 상수원구역이어서 출입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가창 헐티재길 막바지 정자가 서 있는 곡각지점이 그 들머리다.

'대구산맥' 중 마내미골 외곽 역할을 하는 부분은 1,052m봉(출발점)~이고개(790m)~845m봉~785m잘록이~880m봉(닭지봉) 사이 약 3㎞ 구간이다. 이 노정서 먼저 주목할 지형은 보통 '이곡'이라 줄여 불리기도 하는 '이고개'다. 비슬산 이후 사실상의 첫 잘록이로 워낙 유명해 비슬산 최고봉 평원마저 '이곡번치'라 불릴 정도다. 고개서 달성 옥포면 쪽으로 내려서면 얼마 안 가 반송2리 안으로 개설돼 있는 임도에 닿는다.

지금 산길은 이곡(이고개)서 그 직후의 822m봉 올라서기가 까다로울 뿐 이후엔 순탄하다. 여러 봉우리들을 옆구리로 스쳐 지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객들은 다음의 845m봉과 880m봉조차 못 알아보기 일쑤다. 산길이 845m봉을 지나친 뒤 785m재에 이르러서야 능선 위로 잠깐 올라섰다가는 다시 880m봉조차 북서쪽 허리를 감아 돌며 통과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봉우리는 그렇게 무관심해서 될 대상이 아니다. 845m봉은 '명적암' 남산이자 용연사 계곡(무지개골) 외곽능선 출발점이다. 880m봉은 '대구산맥' 최고봉이어서 서쪽(옥포)서 무지개골 안으로 가장 뚜렷이 솟아 보이고, 동쪽(가창)서는 마내미골 안으로 제일 우람져 보인다. 마내미골의 중요 지형을 대부분 포괄하는 저 880m봉을 정대마을서는 '닭지말랭이'(닭지봉)라 불렀다.

산길은 닭지봉(880m) 지나 10여 분 후엔 800여m 길이의 매우 넓적하고 평평한 구간에 도달한다.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올라 피서장소로 삼는 용연사 동쪽 능선이다. 높은 산등성이라기보다 마치 마을 뒤 구릉 같고, 산길 또한 대로로 착각하게 할 만큼 넓다. 이런 능선이라면 고유한 이름을 하나 갖는 게 격에 어울릴 터, 무지개골 뒷능선이니 '무지개능선'이라 하면 어떨까 싶다.

저 평평한 '무지개능선' 중에서도 중심점은 헬기장이 있는 696m구릉이다. 지나온 '원정대'마을 안 '돌아앉은골'과 다음의 '초막골'을 나누는 지릉이 갈라져 나가면서 세 갈래 점에 넓은 터를 형성한 것이다. 거길 지나 조금 뒤에는 서편으로도 지릉이 내려서면서 무지개골을 닫고 약수터가 있는 '황매미골'을 열기도 한다.

저렇게 시작된 황매미골과 초막골을 연결하는 재는 '약수터고개'(655m)다. '비슬산 4.2㎞, 청룡산 6㎞, 반송 3㎞, 정대·초곡 2.5㎞, 명곡 3㎞'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곳. 반송은 약수터와 용연사를 거쳐 내려가는 서쪽 방향 옥포면 동네다. 초곡(초막골)은 일대서 드물게 장마철에까지 등산로가 잘 유지되는 동쪽 가창면 마을이다. 그럼 '명곡 3㎞'는 어느 길로 가라는 말일까?

약수터고개 다음의 687m봉서 분기하는 능선 위로 난 길을 가리킨다. 청룡산을 향해 북동으로 굽어가는 '대구산맥'과 헤어져 북서로 독립해 가면서 옥포(반송리)와 화원(명곡·본리리)을 갈라붙이는 분수령이다. 그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면 늘 등산 차들로 붐비는 '기남재'(기내미재) 등산기점에 도달된다.

그러고 보면 '명곡 3㎞' 안내판이 세워져야 할 본래 자리는 687m봉 상부인 셈이다. 그런데도 거기 닿기 전 앞당겨 저 안내판이 세워진 것은 산줄기와 산길이 따로 다니기 때문이다. 산줄기는 687m봉을 지나고서야 갈라지지만 산길은 미리 오른쪽 왼쪽으로 나뉘어 저 봉우리를 옆구리로 피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길만 따라 걷는 등산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687m봉을 건너뛴다. 하나 687m봉은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봉우리다. 잠깐 오르고도 주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청룡산으로 가는 대구산맥, 그 도중에 북서로 빠지는 삼필봉 능선, 그 너머 있는 대구 시가지, 정대계곡 건너 헐티재 일대 및 최정산 덩어리까지 훤하다.

거기서 북서 방향으로 분기해 기내미재를 향해 가는 산줄기는 마치 팔공산 지릉 같다. 비슬산에선 유례 드물게 화강암과 마사로 이뤄진 것부터가 특이하다. 산줄기를 따라서는 온갖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도열해 예사롭잖은 풍광을 일군다. 마니아가 숱하게 붙어 애지중지하는 게 당연해 보일 정도다.

그런 산줄기 위를 20여 분 걸어 닿는 671m봉은 '대구산맥'에 나타나는 두 번째 '닭지봉'이다. 앞서 본 880m 닭지봉은 정대 쪽으로 돌출한 것이었지만, 산 너머 옥포서는 이 671m봉을 '닭지말랭이'라 부르는 것이다. 용연사 계곡 하류 반송리 마을서 주변 어떤 산봉우리보다 솟아 보이기 때문일 터이다. 가야산은 개 한 마리(개산), 비슬산은 비둘기 한 마리(비둘산) 앉을 만큼만 남고 모두 물에 잠겼던 옛날 대홍수 시대에, 이 봉우리는 닭 한 마리 앉을 만큼 남아 생긴 이름이라 했다. '지'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짐작되지 않으나, 여러 고을에서 공통되게 구사되고 '마당지' '매봉지' 등 다양한 이름에서 반복해 쓰이는 것으로 미뤄 모종의 지형 지칭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닭지봉 능선 분기점인 687m봉 이후 '대구산맥'은 550m재로 대폭 추락한다. '용문사 1.5㎞, 용연사 1.6㎞, 청룡산 4.9㎞'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 곳, 바로 화원 본리리와 동편 가창 정대리 초막골을 잇는 '골재'다. 거기서 본리리로 내려서면 휴양림 상부 계곡으로 이어지고, 초막골로 내려서면 약수터고개 산길과 만나 초곡마을로 간다.

골재 이후 산줄기는 120여m 뛰어 675m봉에 오른 뒤 1㎞ 가까이 높은 능선을 유지하다가 550m 잘록이로 추락하고 곧 555m 높이의 '장단이재'에 닿는다. '마비정 1.5㎞'라는 서쪽길 안내판이 서서 삼거리인 듯 알리는 지점이다. 하지만 장단이재는 옛날 분명한 네거리였다고 했다. 동쪽 '장단이골'로도 중요한 길이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다. 비슬기맥 위의 '윙계재' 옛길이 화원으로 이어갈 때 거치던 게 바로 이쪽 장단이골과 장단이재 길이었던 것이다.

그 길을 다시 걸어보고자 정대계곡 초막골(초곡) 마을 입구서 장단이골로 접어들었다. 길은 물길 서편으로 나 있었고 초입엔 경운기가 다닐 만큼 넓기도 했다. 골은 극히 좁았으나 밭이 있고 논도 있어 한때 민가까지 있었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길은 소로까지 합쳐 20여 분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밭 끝의 약수터를 지나면서 토끼길이 되더니 얼마 후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반면 장단이재서 본리리로 내려가는 길은 골이 아니라 '칼등'이라 불리는 능선 위로 나 있었다. 대부분 구간이 선명했고 우뚝한 '선바위'가 길손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휴양림 진입도로까지 이어지는 그 능선을 줄곧 타는 게 능사는 아니라 했다. 도중에 북으로 빠져 마비정마을(본리2리)로 연결되는 길이 주통로였다는 것이다. '마비정' 또한 옛날 청도 쪽에서 넘어 다니던 사람들이 말을 쉬게 하던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 했다. 거기서는 화원시장으로는 길이 평평히 연결된다.

장단이재(555m) 이후 중요 길목은 수밭재(520m)이나, 거기 이르려면 673m~641m 높이의 봉우리 두 개를 지나야 한다. 하지만 산길은 673m봉의 높이를 부담스러워 해 옆구리로 지나친 후 '세작골재'(625m)로 바로 연결해 갔다가 641m봉을 거쳐 수밭재로 내려선다. 그렇게 우회해버리는 673m봉은 마비정마을 앞능선 최고봉이면서 그 마을과 달서구 도원동 수밭골을 가르는 삼필봉(465m)능선 출발점이다.

수밭재에는 '바깥매남 1.8㎞, 수밭마을 3㎞, 청룡산 1.7㎞, 용연사 4.5㎞, 비슬산 9.8㎞'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중요한 네거리라는 뜻이다. 그 중 동쪽의 가창 정대리 안매내미·바깥매내미 두 마을 쪽으로 나뉘어 잘 발달한 산길은 옛 도보시대 때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을 터이다. 서편 수밭마을 가는 산길로는, 이 수밭재 외에 높이가 100m나 더 높은 세작골재도 병존하는 게 이채롭다. 나름의 용도가 있었을 터이다.

수밭재 이후 '대구산맥' 흐름은 청룡산(794m)을 향해 줄곧 치솟는 형세다. 도중에 666m봉이 하나 있고 지형도는 거기에 '배바위'가 있다고 표시해 놓고 있지만 주목할 바 못 된다. 그보다는 청룡산 도달 직전에 솟은 절벽바위가 장관이다. 또 청룡산을 지나서는 더 대단한 절벽능선이 이어지니, 그걸 그 아래 수밭마을 어르신들은 '상여바위'(생이바우)라 했다. 평평하고 길게 이어진 모습이 상여의 지붕을 연상케 한 모양이었다. 그게 절벽임을 감안하면 '상여덤'이라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았다. 청룡산을 지나면 머잖아 달비고개와 산성산을 거쳐 대구 앞산으로 이어진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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