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나이를 아주 중시하는 것 같아요. 축구 선수들이 선배가 오면 매번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더군요.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가장 먼저 묻는 것도 나이더라고요. 영국에서는 경험과 경력, 능력을 갖추면 나이와 상관없이 대우하고 존중하는데 한국은 나이순인 것 같아요. 이 때문인지 적응하기가 힘들어요."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 온 대구FC 숀 카우치(26·Shaun Couch) 코치의 얘기다.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 소속 유소년 지도자인 그는 지난 9월부터 대구FC U-12팀 선수반을 지도하고 있다. 대구에 오기 전 한국에 대해 서울이 있다는 것 외엔 아는 게 거의 없었을 정도여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단다. 음식점에서 신발을 벗고 밥을 먹는 것, 상점 등에 들어갈 때마다 인사하는 것 등이 모두 낯설다.
그는 그러나 축구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의 한국 대표팀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의 붉은색 물결과 대표팀 4강 진출이 인상 깊었다는 등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지난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이룬 한국의 16강 진출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또 국가대표팀 간에는 한국과 영국의 수준 차가 크지 않지만 클럽의 경우 선수 및 자금 투자, 광고, 방송 중계 등 영국과 한국의 투자 규모 차이가 엄청나다고 했다.
그는 유소년 축구 얘기를 꺼내자 더욱 진지해지고 냉정해졌다. 영국 프레스턴 대학에서 '스포츠 사이언스', 센트럴 랭커셔 대학에서 '스포츠 코칭' 과정을 전공한 그는 유럽축구연맹(UEFA) 'B'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2007, 2008년엔 블랙풀 유소년, 2009년부터는 볼턴 원더러스 유소년 지도를 맡고 있는 유소년 지도 전문가이다.
"자동차를 만들 부품은 다 갖춰져 있는데, 조립할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한국 유소년 축구에 대해 '시스템 부재'부터 지적했다. 한마디로 '유소년에 맞는 코칭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 그는 "대구FC에서 지도하고 있는 유소년의 절반 정도는 영국 유소년 선수의 자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지만 성인에게나 맞을 법한 프로그램을 유소년에게 적용하는 등 연령대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체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유소년에겐 공을 들고 줄 서서 기다리게 하는 축구가 아니라 계속 공을 다루며 움직이면서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은 클럽 등에서 단계적으로 교육받아 성장한 선수가 많아 선수층이 두터운데 한국은 시스템 등 구조적인 문제로 베스트 11뿐인 것 같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영국에선 크게 '축구 입문 단계', '축구 선수를 꿈꾸는 단계', '클럽 팀 진출 희망 단계' 등 3단계로 나눠 물 흘러가듯 연속적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교육하지만 한국엔 유소년에 맞는 프로그램도 없고 연속성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의 유소년 선수의 성장 흐름은 중학교 진학하는 순간 단절되는 것 같아요."
그는 유소년에서 잘 교육받아 실력 있는 선수의 경우 중학교에 진학한 뒤 외국 유소년 클럽으로 유학가고, K-리그로 잠시 돌아왔다 다시 싼값에 외국으로 나가는 등 경제적으로나 한국 축구 질적 성장 측면으로나 모두 도움이 안 되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축구 철학에 대한 비교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도 영국처럼 12세까지는 축구를 즐기는데 중·고교에만 진학하면 승부에 너무 집착해 축구하는 재미를 잃어버리는 같다고 꼬집었다. 학생 땐 과감히 돌파하다 공도 뺏겨보고 협력도 하는 등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야 하는데 골 넣는 데만 너무 집중하는 등 승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
한국의 강점으로는 완벽한 수준의 시설과 유소년들의 열정을 들었다. 유소년 클럽 축구장 시설이나 버스로 선수들을 이동시켜주는 서비스, 모두 유니폼을 갖춰 입고 축구 선수처럼 배우는 것은 한국이 한 수 위란다. 또 한국 유소년 선수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열기가 뜨겁고,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야망도 크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유소년들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잘먹고 나이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이 세계 축구계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유소년 시스템을 개선, 구조화하고 코칭 프로그램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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