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제 중 한 문제만 맞혀도 A학점을 주는 절대평가여서 영어강의를 들어요."
2005년 이후 대학의 영어 강의가 급증하고 있지만 '무늬만 영어강의'가 많아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학들이 국제화지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있지만 수업의 질은 크게 떨어져 학계 일각에서는 대학들이 맹목적인 '글로벌의 함정'에 빠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상당수 교수들의 영어 강의는 단순히 영어를 읽고 해석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학생들 역시 영어 강의가 절대평가여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수강하는 등 대학 영어 강의가 국제적 감각 향상이라는 목적과 달리 '수능 외국어영역'으로 변질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 주요 대학의 영어 강의 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10년 1학기 각 대학의 영어 강의 보고서에 따르면 계명대는 전체 1만411개 강의 중 984개, 경북대는 9천498개 강의 중 285개, 대구가톨릭대는 3천894개 강의 중 86개가 영어 강좌다. 계명대와 경북대의 2007년 2학기 영어 강의가 각각 178강좌와 55강좌였던 것과 비교하면 영어 강의 수가 3년 만에 5배 넘게 급증한 것.
대학 영어 강좌가 해마다 급증하는 것은 외국인 교수와 외국인 학생, 해외 파견 교환학생 비율과 함께 '대학 국제화 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대학들은 평가를 의식, 경쟁적으로 영어 강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영어 강의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현대 물리', '미시 경제학'과 '논리 회로' 등 우리말로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들이 줄줄이 영어 강의로 개설돼 교수와 학생 모두 답답해 하고 있다.
상당수 한국인 교수들은 파워포인트 영상을 띄워 놓고 책을 줄줄 읽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전공 과목 이해보다 영어 해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대학생들의 영어 강의에 대한 접근 태도도 문제다. 영어 강의가 절대평가로 좋은 점수를 받는데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수강하는 학생들이 상당수다.
영남대 4학년 김민철(가명·28) 씨는 "지난 학기 들었던 한 수업은 영어로 들으니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며 "하지만 영어 강의는 절대평가여서 시험기간이 되면 교수님이 한글로 요점 정리를 해주고 성적도 잘나오기 때문에 들었다"고 털어놨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영어 강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평가와 점수 따기에 매몰된 영어 강의가 교수와 학생에게 모두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경북대 K교수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학생들이 단지 점수가 잘 나온다는 이유로 영어 강좌를 듣는다면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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