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짙게 드리웠다. 봉화의 진산으로 불리는 문수산(文殊山·1,205m)을 찾았다. 봉화읍에서 물야면 방향으로 915번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오전약수탕 쪽으로 꺾은 뒤 두내약수탕이 있는 곳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된다. 오늘 찾는 길은 문수산 동쪽 자락길이다. 문수산 정상을 오른편에 두고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굽이길을 지나 산자락 남쪽에 있는 우곡 성지까지 이르는 길.
두내약수탕에서 산쪽으로 꺾어들면 '춘양목 산림체험관'이 나온다. 이곳 일대는 '봉화 춘양 문화재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돼 있다. 여기서 자라는 1천488그루는 말 그대로 문화재 복원 시 사용될 목재다. 2001년 지정됐으며, 나무마다 지정번호를 매기고 황색 페인트로 띠를 둘러 관리하고 있다. 안내 팸플릿에는 '100년 후 영광을 위한 기다림'이라고 적혀 있다. 아름드리 춘양목들은 언젠가 귀히 쓰일 날을 기다리며 무럭무럭 크고 있다. 토질이 좋아 빠른 생육을 한 덕분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소나무의 나이는 70년 안팎.
숲해설가와 함께 숲길을 거닐 수도 있다. 1.5㎞의 짧은 구간이지만 오밀조밀하다. 천천히 산림욕을 즐기며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등산을 온 것도 아닌데 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자녀들과 함께 왔을 때 재료비 1천원만 내면 나무공예 체험도 할 수 있다. 3월부터 12월까지 숲해설가가 휴일도 없이 도와준다. 숲이 뿜어내는 향기는 세상 어떤 향수로도 흉내낼 수 없다.
이곳의 행정지명은 춘양면 서벽리. 앞서 915번 지방도를 따라 잠시만 더 내려가면 강원도 영월과 춘양을 잇는 88번 지방도와 만나는 서벽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바로 옆에 서벽초등학교가 있고, 무려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교정에 우뚝 솟아있다.
경북도가 펴낸 '산과 숲, 나무에 얽힌 고향이야기' 중 봉화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 순종 2년(1908년) 5월 의병 1천 명이 태백산에서 내려와 서벽에 이르렀다. 일본군이 삼척으로 행군한다는 척후병의 정찰 보고를 접한 뒤 이들은 서벽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30여 그루를 은신처 삼아 매복했다. 이윽고 일본군 200여 명이 다가오자 화승총으로 일제히 공격을 가해 40여 명을 생포하고 나머지를 모두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세월은 흐르고 1925년 이곳에 헌병주재소를 세운 일제는 패전의 쓰라린 기억을 없애기 위해 느티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 다만 성황당에 붙어있던 느티나무 한 그루만은 꺼림칙한 나머지 반쪽만 베어가고 남겨두었다.
이후 성황당은 사라지고 서벽초교가 들어섰다. 교문을 지키던 느티나무는 다시 한 번 수난을 당한다. 30여 년 전 나무 상인들이 거대한 느티나무에 눈독을 들이고 베어가려 한 것. 이들은 나무를 먼저 고사시키기 위해 기름을 붓고 불을 놓았단다. 결국 남은 나무의 반쪽이 다시 불에 타버렸다. 하지만 유구한 세월을 이어온 느티나무의 생명력은 강했다. 다시 반쪽이 남아 지금에 이른다.
느티나무뿐 아니라 인근 금강송도 일제 수탈과 근대 남벌의 피해를 입었다. 춘양목이라는 별칭도 알고 보면 남벌의 아픈 기억이 담긴 이름 아닌가. 그런 상흔이 있는 춘양에 문화재용 목재생산림이 자리 잡은 것도 새삼 뜻깊은 일이리라. 유난히 목질이 단단하고 쉽게 썩지 않는 금강송은 400년이 지난 조선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목관의 나이테가 그대로 보일 정도이고, 600년이 넘는 봉정사 극락전이나 경복궁에 사용된 목재가 지금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100년 후의 영광'을 기대할 만한 장한 목재인 셈이다.
우람한 춘양목을 뒤로한 채 숲길을 따라 문수산 자락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우곡 성지까지는 12㎞가 넘는 제법 긴 구간. 가을 산행이나 산악 자전거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코스다. 정상 7, 8부 능선을 따라 수십 굽이를 도는 길이다 보니 크게 가파를 것도 없이 호젓한 숲길을 즐길 수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큰 굽이를 돌고 나면 작은 굽이가 나오고, 골짜기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산자락을 감아돈다. 어느새 이렇듯 높이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산아래가 까마득하다. 작은 발걸음이 쌓이고 쌓인 덕분.
산자락 아래 춘양면 도심리 구억마을에는 '식기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부족국가 시절 이곳 마을 촌장은 백마 씨였다. 큰 부자였던 백마 촌장은 인근 소왕국의 구리왕에게 가장 많은 세금을 내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인심이 좋았던 백마 촌장의 집에는 1년 내내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재산도 많았지만 베풀기도 아끼지 않은 성품 덕분이었다. 하지만 며느리는 달랐다. 인근 화방국(현재 춘양면 서벽리 꽃마 인근) 공주로 자란 탓에 게으른 데다 편히 살기만을 원했다. 하루는 어느 스님이 찾아와 염불을 하자 시주를 하면서 "손님이 못 찾아오게 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청했다. 스님은 집 앞 식기바위(밥그릇 바위)를 엎어놓으면 된다고 했다.
밤이 되길 기다린 며느리는 식기바위를 뒤집어놓았고, 이후 손님이 끊기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손님이 사라져 편안해졌지만 살림도 차츰 궁핍해졌다. 결국 가산을 탕진하고 신랑마저 죽어버리자 인심을 잃고 빈손으로 이사하게 됐단다. 이런 전설을 가르침 삼은 덕분일까.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인심은 도심'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심 좋기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 며느리는 손님 치르기가 얼마나 싫었기에 그 무거운 바위를 뒤집었을까. 지금도 남아있는 식기바위는 무게가 15t에 이른단다.
문수산 일대에는 2014년 국립고산수목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봉화군 산림과장을 지냈고 현재 봉화숲해설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전무종 씨는 "문수산에는 아름드리 금강송뿐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이 많이 있기로 유명한 곳"이라며 "수목원이 문을 열면 백두대간에 있는 온대 및 한대식물종을 체계적으로 보전·연구하고 자원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느덧 길은 끝을 향하고 있다. 2시간 넘게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제 겨우 끝자락이 보인다. 그만큼 문수산 자락은 깊고도 넓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봉화숲해설가협회 전무종 회장 054)672-0577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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