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빗나갔다. 그곳에 붉거나 노란 단풍은 없었다. 간혹 보여도 색이 예전 같지 않았다. 가을이 아닌 다른 계절 속으로 잘못 들어선 게 아닌가, 착각마저 들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법주사에 다다랐는데도 예전의 그 풍경과는 만나지 못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쉬움도 커졌다. 은행나무도 단풍나무도 칙칙했다. 늙은 어미의 젖처럼 쪼그라져 있다. 제대로 물들어 보지도 못하고 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마음으로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가을 속에 풍덩 빠지고 싶었던 설렘이 찰나에 지워졌다.
동행했던 지인과 나는 변화무쌍했던 날씨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사람은 기온이 떨어지면 옷이라도 껴입을 수 있지만 나무는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어야 한다. 옷은커녕 장갑이나 마스크를 할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잎사귀들은 물들기도 전에 대책 없이 얼어버렸다.
언 몸에 다시 햇볕을 쬐어본들 병든 몸이 회복될 수 있을까. 올해는 유독 비가 잦았고 그 때문에 일조량은 부족했다. 빛의 양이 충분하지 않았으니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만무하다. 햇볕의 젖을 제대로 빨지 못한 잎사귀들은 영양실조에 걸린 듯 병색이 완연하다.
속리산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청남대로 차를 몰았다. 지인과 나는 골프장 앞으로 난 길을 천천히 걸었다. 오른쪽에는 대청호가, 왼쪽에는 낙우송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아래를 걷던 우리는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발 아래가 온통 울퉁불퉁하다. 크고 작은 혹이 수십 개다. 땅속에 묻혀 있어야 할 뿌리들이 일제히 땅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땅속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내 말에 식물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이 웃는다. 낙우송 뿌리는 원래 호흡하기 위해서 하늘로 자란다고 한다. 다행이다. 나는 땅속에 문제가 생겨 얘들이 숨이 막혀 땅위로 코를 내민 줄 알았다. 간혹 기름 유출이나 오염된 토질이 문제가 되어 기근(氣根) 현상이 일어나는 나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 있듯이 자연에게도 적당량의 햇볕과 공기와 기후가 필요하다. 적합한 환경만 만들어 준다면 봄은 봄다워지고 여름은 여름다워지고 가을은 가을다워질 것이다. 그 요소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원하는 계절 또한 기대할 수가 없다.
변덕스런 날씨로 자연이 혹독한 시련을 당할 때는 모른 척하다가 단풍을 즐기겠다고 나선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수필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