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형마트 끊고 살기] 그 많던 가게들은 어디로?…문 닫긴 점포만 수두룩

화려해서 더 슬픈 방천시장. 예술가와 상인들의 상생을 모색하며 다양한 시도가 계속됐지만, 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결국 시장은 문 닫힌 점포들만 즐비하다. 정경준 씨 제공
화려해서 더 슬픈 방천시장. 예술가와 상인들의 상생을 모색하며 다양한 시도가 계속됐지만, 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결국 시장은 문 닫힌 점포들만 즐비하다. 정경준 씨 제공

중소기업청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마트 한 개가 들어설 때마다 주변 재래시장의 점포 150개가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대구의 전통시장과 골목상점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결심 단단히 하고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던 우리 '슈퍼우먼' 체험단들. 휑한 시장 분위기에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피부로 체감한 한 주였습니다.

장삼남(45·달서구 두류2동) 씨는 집 부근에 있는 평화시장(우시장)을 찾았다가 썰렁한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황제예식장 자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 10여 년. 예전에는 채소가게, 신발가게, 그릇가게가 즐비하게 서 있었던 시장이 이제는 문을 닫은 가게로 어수선했고, 사람이 다니지 않아 폐허같이 흉한 모습으로 변한 뒷골목의 흔적뿐이었습니다. 세 곳이나 됐던 문방구 중 두 곳이 문을 닫으면서 남은 한 곳이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는 날이면 아이들의 준비물 하나 사기 위해 대형마트를 가야하는 실정이 됐습니다. 장 씨는 "당시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좀 더 편리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고,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집값이 올라 좋아질 거라고 반겼지만 이제는 작은 것 하나라도 대형마트까지 가서 사야 하다 보니 주민들의 불편은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가까이 상점이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했습니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방천시장을 찾은 정경준(51·수성구 만촌1동) 씨는 "시장 곳곳에 그려진 벽화들…. 화려해서 더 슬픈 것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합니다"고 썼습니다. 한때 빈 점포를 화가들이 작품활동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면서 상인과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광장을 꿈꿨지만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작가들의 노력으로 막걸리탑과 예쁘게 그림이 그려진 가게, 특색 있게 만들어진 간판 등 볼거리가 늘어났지만 시장을 찾는 이들이 없다 보니 문을 닫은 가게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 찾은 동구시장에서도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있었던 가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잡채를 만들어 먹기 위해 당면을 사려고 슈퍼마켓을 찾았지만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SSM에 밀려 문을 닫은 것인지 일요일이라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장을 한참 헤맨 끝에 건어물 가게 한 귀퉁이에서 겨우 당면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이제는 잡채에 들어갈 돼지고기를 사야 해서 일전에 한번 갔던 정육점을 찾았는데 보이질 않았던 겁니다. 옆 채소가게에 물었더니 "아줌마들이 자주 안 찾아주니 가게가 문을 닫아뿟다 아인교"라는 한숨 섞인 답이 돌아왔습니다.

제갈민(46) 씨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오를 넘긴 불로시장은 썰렁했고 사방팔방 문이 닫힌 가게뿐이었습니다. 서너 군데 문을 열어 둔 가게는 컴퓨터수리, 공부방, 중국음식점, 미장원, 옷수선집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그곳들도 적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채소를 팔고 있는 할머니께 "시장이 언제부터 저렇게 썰렁했느냐"고 여쭈었더니, 바늘처럼 따가운 말씀을 쏟아내십니다. "집집마다 차들이 있어 놓으니 남의 동네까지 달려가서 한 보따리씩 사다 나르제, 안 그러면 저 마트로 달려가제. 시장이 장사가 돼야 살지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 죽어야제."

동네 가게들이 사라지니 불편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평소 아이 책을 사는데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했다는 최명희(32·경산시 옥산동) 씨는 "한 달에 10권 이상의 책을 사는데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온라인 쇼핑을 하지 않다 보니 책을 살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경산에는 갈 만한 서점이 하나도 없다는군요. 남은 한두 군데 서점 역시 학생들 참고서나 취급하는 것이 고작이랍니다. 그렇다 보니 최 씨는 이달 책 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고 푸념했습니다. "동네 서점을 진작 좀 사랑해줘야 했어"라는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말입니다.

슈퍼마켓뿐만이 아니라 꽃집, 세탁소, 서점, 음식점 등 모든 영역을 대형 마트가 독식하면서 이제 우리가 지나다니는 골목길에는 변변한 상점을 찾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열심히 일을 해봤자 자영업자들이 얻는 수익은 임금노동자들 소득수준의 72% 수준에 불과한 현실입니다. 자꾸만 생계 터전을 잃어가는 서민들.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꿀 수는 없는 걸까요?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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