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전봇대 임대료는 공짜 수준으로 내면서 통신·케이블 업체 등으로부터는 엄청난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는 한전(본지 10월 20일자 1·3면)이 고무줄식 송전탑 보상비를 책정해 비난을 사고 있다. 이와 함께 보상비를 한번 지불하면 영구적으로 보상 의무가 사라지는 법령 때문에 시민들의 재산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사는 박인수(가명·64) 씨는 집앞 산에 우뚝 솟아있는 송전탑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축 늘어진 전선을 20개나 걸치고 있어 도심 미관을 해치는데다 재산까지 축내는 '좀도둑'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 4월 한전으로부터 어처구니없는 통보를 받았다. 1999년 선친에게 증여받은 야산(896㎡) 송전탑 보상비가 턱없이 낮은 데다 한번 보상받으면 무기한 임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아버지에게 땅을 상속받을 때엔 재산세가 8만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올라 지금은 한 해 세금만 120만원 이상 나온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전 측에 '임대료를 내든지 아니면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라'는 제안을 했다. 이에 한전은 지난 4월 1천787만5천200원을 보상한다고 통보했다. 박 씨로선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액수다. ㎡당 공시지가 2만2천원(2009년 기준)보다 낮은 가격(㎡당 1만9천950원)이고 땅값이 훨씬 싼 다른 지역 송전탑 보상가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인 까닭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송전탑 선로에 대한 보상을 받은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 이모 씨의 경우 공시지가가는 ㎡당 1천390원(2009년 기준)으로 박 씨 땅보다 한참 못 미쳤지만 1천923만450원(1천313㎡)을 보상받았다. 박 씨가 받을 공시지가의 0.9배 보상과는 달리 10배가 넘는 ㎡당 1만4천650원을 받은 셈이다.
송전탑이 지나가는 주변 환경도 판이하게 다르다. 박 씨 땅의 송전탑은 최대 아파트단지(4천256가구, 3만여 명)인 수성구 황금동 롯데화성골드캐슬파크와 150m 정도 떨어져 있고 그 앞에는 편도 5차로 도로가 나있다. 송전선도 높이 10m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20가닥(18가닥+어스선 2개)의 선로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고철리 송전탑은 좁은 농로에 5가구, 고압선도 7가닥(고압선 6가닥+어스선 1가닥)뿐이다. 높이도 20m로 황금동보다 높다.
한국전력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박 씨 땅은 개발제한구역 내 순수자연림인데 반해 고철리 땅은 언제든 토지 형질변경을 통해 개발가능한 대지이며 감나무가 식재된 과수원이라는 사실이 다르다고 했다. 한전 관계자는 "전문감정기관이 감정을 하기 때문에 한전은 책임이 없고 공시지가가 높다고 보상비를 많이 받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씨만 억울하게 됐다. 과세용지와 토지 보상용 감정기준 지가가 제각각이어서 적은 돈의 감정을 받고도 매년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보상하면 송전선로가 존속하는 기간까지라고 명시돼 있어 더 이상 보상받을 길이 없다. 박 씨는 "수입도 없는 노인네가 앞으로 그 많은 세금을 어떻게 내라고 한번 보상으로 그치냐"며 "차라리 선로를 지중화하라"고 하소연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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