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을 건설한 몇몇 외국의 역사를 접하다 보면 '우리 조상들은 왜 그런 역사를 만들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은이 문소영 역시 우연히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책을 접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았다고 말한다.
17세기 이전까지 조선은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했지만 그 뒤로 우월함을 이어가지 못하고 쪼그라들어 결국에는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은이는 그 원인을 지정학적 이유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보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시각이 전혀 새롭다거나 학술 논문처럼 깊이를 갖고 있지는 않다. 지은이는 '약소국으로 전락했던 조선의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가능한 한 살을 발라내고 뼈대에 집중한다.
지은이는 지정학적으로 변방이기에 조선이 약소국으로 전락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말한다. 변방인 몽골과 일본이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던 것에 비해 그보다 많은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였던 한반도의 조선이 그러지 못했던 데는 지정학적 요인이 아닌 내부적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책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과 일본의 경제, 문화, 사회, 정치를 비교하고 있다. 조선과 일본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살피고 또 조선과 일본을 보기 위해 중국도 들여다보았다. 조선의 개항이 늦었던 이유, 고립 혹은 가난이 낳은 흔적, 중산층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조선에 비해 쇼군이 나서서 부국강병을 이룩한 일본 등을 파고든다.
특히 '중국적 세계화'에 만족한 조선의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조선과 비슷하게 쇄국 정책을 펴고 있었음에도 해외 정보와 문물에 예민했던 일본을 살펴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은이는 조선은 '어떻게 해보겠다'는 욕망조차 없었다고 평가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조선의 르네상스로 알려진 영'정조 시대에 대해 가혹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지은이는 이 시기를 르네상스는커녕 역주행의 시대였다고 꼬집는다. 계몽 군주로 알려진 정조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싹트고 있던 문화적 경향을 억압하고 언로를 봉쇄하고 과거로 회귀하려고 시도한 군주다. 그가 설치한 규장각은 학문을 사랑하고 중흥시키려는 목적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문체반정을 강화할 수 있는 책만 골라놓은 도서관'이라고 비판한다.
지은이는 영조와 정조는 공자, 맹자, 주희로 이어지는 중국의 고전을 내세워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으며 주자학적 유교 질서의 회복 및 강화로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의 북벌론 역시 '성난 여론이 무서워 시늉만 한 것이며 실력을 키우는 대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한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하고 '청나라를 주적으로 설정한 결과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는 서양의 신기술과 과학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효종의 형으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선진 문물에 눈을 떴던 소현세자와 그의 아내 강빈이 귀국 직후 죽었다는 점(독살설이 많다)도 꽉 막힌 조선 지배층의 실태를 보여준다.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원한에 사로잡힌 조선은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까지 무시했다. 18세기 후반 청나라가 싫어도 청나라의 선진 문물은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룩하자는 북학파가 나타나기까지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150년가량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전 세계가 역동적으로 꿈틀거릴 때 조선은 '은자의 나라' '우물 안의 개구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16~18세기 조선'일본 비교'를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책은 조선의 어떤 면이 대륙 국가 조선을 약소국으로 만들었으며 일본의 어떤 면이 변방의 섬나라 일본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는지 결과를 바탕으로 역추적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사 기자로 근무했다. 미국 듀크대학의 아시아 안보 연구프로그램을 연수했다. 책에서 지은이는 조선이 장점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고쳐야 할 단점을 중심으로 보았다고 밝히고 있다. 438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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