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술이 도시를 살린다] ④제주 이중섭미술관

제주, 중섭과의 짧은 인연도 놓치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 화가가 있었다.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여자와 결혼한 화가는 생활고에 하루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1951년 6·25전쟁을 피해 세 살, 다섯 살 알밤 같은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제주도 서귀포로 피란 왔다. 가난한 그의 집은 서귀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방을 얻었다. 4.6㎡(1.4평)의 초가. 한 사람 지내기도 좁은 작은 방이지만 가족은 마냥 행복했다. 배가 고파 게를 잡아먹었다. '게를 하도 많이 잡아먹어' 미안한 마음에 게를 그림의 주요 소재로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행복은 수개월에 불과했다. 화가는 부인과 아들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전국을 떠돌며 부두노동 등을 하다가 1956년 대구의 한 병원에서 40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 화가는 한국 화단의 거목, 이중섭이다. 서귀포에서 보낸 1951년은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제주도 서귀포시는 이 사실을 지나치지 않았다. 1996년 전국 최초로 화가 이름을 거리명으로 정한 '이중섭 거리'를 만들었다. 곧이어 이중섭의 거주지를 복원하고 2002년 서귀포 시립이중섭미술관을 개관했다. 진품 단 한 점 없이 일단 출발부터 했다.

개관 8년째인 요즘, 이중섭미술관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 6코스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원화가 없다'는 비판은 기증으로 곧 해결됐다.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대표가 2003년 이중섭의 원화 8점을 비롯해 근·현대 화가 작품 60여 점을 기증했고, 뒤이어 갤러리현대 박명자 대표가 '파란 게와 어린이' 1점과 54점의 다른 작품을 기증했다. 기증작품만으로 미술관 개관 1년여 만에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지난해엔 10억원의 서귀포시 예산을 들여 원화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 '꽃과 아이들' 두 점을 추가로 구입했다. 이로써 이중섭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총 11점으로 늘어났다.

미술 전문가들은 "미술사적으로 볼 만한 중요 작품은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국민 화가 이중섭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하루 평균 300여 명의 관람객이 이 작은 미술관을 다녀간다.

이중섭미술관 주변은 이중섭의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이중섭 공원은 50여 년 전 제주도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낮은 돌담은 제주도 정원 특유의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관광객들은 돌담길 사이를 오가며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풍광을 만끽한다. 제주 방언으로 '우영팟'이라 불리는 텃밭에는 머귀나무, 팽나무, 당유자 등 제주 고유의 식생을 볼 수 있다. 이중섭 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친구들과 함께 이중섭 공원을 찾은 우명진(48·경남 진주) 씨는 "화려한 조각이나 똑같은 꽃을 심어놓은 여느 공원과 달라 신선하고 좋다"면서 "이런 곳에서 이중섭 화백이 작업했을 거라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중섭의 주거지는 방과 부엌을 합해도 10㎡(3평) 남짓 된다. 작은 솥이 두 개 걸린 흙 바닥의 부엌은 가난한 화가의 살림살이를 짐작하게 한다. 이중섭 거리는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제주도 현무암으로 보도블록을 깔아 제주도 특유의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이중섭 미술관에는 이중섭과 부인 마사코 사이에 오간 편지들이 전시돼 있다. 편지에는 유독 대구가 자주 등장한다. 마사코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대구에서 전람회도, 서울의 전람회가 호평으로 평가받아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 믿습니다.'(1955년 4월 24일)는 내용이 있다. 시인 구상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구상 씨께는 여러 가지 신세를 지고 귀찮은 일을 부탁하는 등 깊이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며 '대구에서 작품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 있다'(1955년 6월22일)는 말로 남편의 소식을 묻고 있다.

대구는 이중섭 화백의 주요 활동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미술품 경매시장에 등장한 이중섭의 '황소' 역시 대구 자취방에서 소장자에게 건네준 것이다. 이중섭과 대구의 깊은 인연을 생각한다면 서귀포시의 발빠른 행보가 부럽기만 하다. 이중희 계명대 미술대학 교수는 "이중섭은 대구, 통영, 마산을 거점으로 오갔는데 특히 구상 시인과 가깝게 지내며 대구에서 많은 활동을 했고 전시회도 가지는 등 인연이 특별한 곳"이라고 말했다.

이중섭미술관 방문객은 2007년 6만 명이던 것이 올해는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도 대부분의 관광지가 대형 관광버스로 입장하는 단체 손님인데 반해 이곳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대부분이다. 이중섭미술관의 전은자 학예사는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라면서 "아이들의 모습, 게 등 주요 소재를 얻은 곳이 서귀포"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서귀포시가 이중섭 창작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이중섭과 비슷한 풍경을 바라보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어 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글·사진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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