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경제 '헐값 달러' 덫에 걸릴라

美연준 '달러 살포'정책 '得보다 失' 지적

세계 경제가 돈 위에서 떠다니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달러를 마구 찍어내 시장에 풀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가 대량으로 풀리면서 주식·채권시장이 급등하고 금, 원유 등 원자재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수출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간신히 살아날 조짐을 보이던 세계 경제가 다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돈만 풀어도 빚 부담을 줄이고 수출도 늘릴 수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미국의 달러 공세에 중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은 물론 신흥국들까지 반발하는 이유다.

◆돈 위에 떠다니는 세계 경제

세계 증시는 돈의 힘을 업고 연일 초강세다.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장중 1,970선을 넘는 등 연일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0.29포인트 오른 11,357을 기록했고 나스닥지수도 0.62% 상승했다. 다우지수는 2009년 3월 최저점에 비해 75%나 올랐다. 중국의 상하이 종합지수는 지난주 5.1%가 올랐고, 지난 10월 이후 18%나 급등했다. 홍콩증시 항셍지수도 이달 8일까지 6거래일 동안 8.1% 뛰었다.

금이나 원유 등 국제 원자재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원자재시장의 결제 수단이 달러이다 보니 달러값이 떨어지면 반대로 실물 가격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9일 미니 금선물 11월물 종가는 770원(1.54%) 오른 5만260원을 기록했다. 상장 이후 최고치다. 국제 금 시세도 사상 최고인 온스당 1천40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 유가도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0일 거래된 두바이유는 전날보다 배럴당 0.30달러(0.35%) 오른 85.71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은 왜 돈을 찍어내나

미국이 돈을 풀 수 있는 이유는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빚이 많아도 미국은 부도가 나거나 망하지 않는다. 돈을 찍어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달러를 풀어 달러값을 떨어뜨리면 무역수지 적자가 개선되고 외국에 진 빚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외환보유고에 미국 국채나 회사채를 많이 가진 국가일수록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보게 된다. 수출 경쟁력도 당연히 떨어진다. 따라서 해당 국가도 자국 돈의 값을 낮추기 위해 돈을 풀거나 환율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 글로벌 환율전쟁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특히 미국이 목표로 삼는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은 중국 위안화가 너무 낮게 평가돼 자신들이 무역수지에서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도 쉽게 위안화 절상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미국은 위안화를 20% 절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위안화를 2%만 절상해도 중국의 외환평가손은 520억달러, 3천432억위안에 이른다.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값을 올리는 데 반발하자 아예 달러값을 낮춤으로써 위안화 절상 효과를 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달러는 모든 통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달러값의 하락은 결국 모든 통화의 강세를 불러온다.

미국 국내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미국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더블딥 우려까지 나올 정도로 속도가 더디다. 따라서 미국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량으로 돈을 풀어 가계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늘어난 소비는 다시 산업 생산을 활발하게 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종의 '선순환'인 셈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심보

달러가 많이 풀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수입 물가는 싸지고, 세계 투기자금들이 풍부한 달러를 업고 신흥국 시장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주가가 뛰고 채권값이 강세를 보인다. 그러나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헐값이 된 달러는 증시의 유동성을 부추기고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 돈이 많아지면 인플레이션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또 환율의 급격한 상승은 수출기업들의 목줄을 죈다. '달러 약세, 유로 강세'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감소한 남유럽 국가들의 부도 위험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달러값을 낮춰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겠다는 시도가 미국 정부의 오판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통화전쟁의 진행과 세계 경제 회복'이라는 주제의 국제회의에서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총생산(GWP)의 0.6%에 불과하다"며 "미국의 경상수지 불균형은 미국의 재정정책과 가계의 저축률 때문이지 중국의 위안화나 아시아 국가의 재정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또 미국이 푼 돈이 미국 가계로 흘러들어가지도 않는다. 미국의 대출 수요와 기대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미국이 돈을 푸는 조치가 실물경제에 주는 효과는 작고 되레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연준의 2차 양적완화가 장기금리 하락, 주가 상승, 미 달러화 약세를 가져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이러한 가격지표의 변화가 실물경제 회복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풍부한 달러화 유동성이 신흥시장국으로 추가 유입돼 자산가격의 거품을 가져올 수 있고 환율분쟁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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