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고래다!" 갑판에서 지루하게 바다를 주시하던 연구원들의 눈빛이 바빠졌다. 강원도 묵호항을 떠나 고래탐사에 나선 지 이틀째, 울진 죽변 앞바다 20마일 해상에서 참돌고래를 만났다. 참돌고래는 사방으로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씩 짝지어 자맥질하듯 파도 위로 모습을 드러내길 반복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도 수십 마리는 돼 보였다. 탐사 첫날 삼척 앞바다에서 한 차례 목격한 데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참돌고래는 동해연안에서 가장 많이 목격되는 고래다. 한 마리가 하루에 물고기 5~10㎏을 먹어 치우는 대식가다. 특히 오징어 킬러로 오징어떼를 따라 이동하기도 한다. 어민들이 애써 집어해 놓으면 수시로 나타나 조업을 망치기 일쑤다. 어민들에게 참돌고래는 눈엣가시다. 참돌고래는 국제법상 포경 금지대상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못 잡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민들의 이런 속내를 참돌고래는 알까? 길쭉한 입 모양새가 꼭 철부지 개구쟁이 같다. 오늘은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재주도 안 부리고 파도에 얼굴만 문지르며 게으름을 피운다.
개체 수, 서식환경 등 조사를 마친 연구원들이 다시 지루한 탐사를 재개한다. 이들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나온 고래 박사들. 묵호에서 울산까지 동해연안 소형 고래류를 탐사 중이다. 탐사를 지휘한 안용락 박사는 "한반도 주변에는 지구상에 서식하는 80여 종의 고래 가운데 35종의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희귀종인 귀신고래도 보였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무분별한 남획을 기점으로 지금은 동해에서 종적을 감췄다.
탐사 3일째, 울진 후포항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70t급인 탐구 12호가 점차 요동치기 시작했다. 파도가 하얀 포말을 거칠게 토해내며 배를 흔들어 댔다. 기상악화로 더 이상은 탐사불가였다. 할 수 없이 뱃머리를 육지로 되돌렸다. 항로 주변 곳곳에 그물을 친 자리를 표시한 부표가 떠 있었다. 고래에게 그물은 죽음의 벽과 같다. 하지만 어민 입장에서 그물에 잡힌 고래는 큰 행운이다. 특히 밍크고래는 맛과 영양이 탁월해 2천만~3천만원을 호가한다. '바다의 로또'로 불린다. 그러다 보니 불법포획하는 꾼도 설친다. 올해 10월까지 포항해경에 신고된 밍크고래는 벌써 35마리. 이 가운데는 불법 포획도 12마리나 된다. 기타 고래까지 합치면 179마리나 잡혔다. 한반도 전역에서 혼획, 불법 포획량을 유추해 보면 '사실상 포경상태'라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무리는 아닌 듯하다.
고래는 물고기가 아닌 동물로, 해양 생물의 깃대종으로, 바다 생태계의 균형자로 보호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무조건 보호도 능사가 아니다. 바다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고래와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어민 모두가 지혜롭게 공존하는 해법이 절실하다.
사진·글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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