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팽팽한 긴장을 뒤집는 마법 "웃겨라"

현대인 필수 경쟁력 유머·조크

경기침체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대한민국 곳곳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 웃음을 주는 조크가 필요한 이유다.
경기침체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대한민국 곳곳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 웃음을 주는 조크가 필요한 이유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황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고 가난 때문에 억울해서, 혹은 외로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이나 대기업 임원, 인기 연예인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웃음을 잃은 우리 사회에 '웃음'을 주는 유머나 조크가 꼭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책도, 영화도, TV도 '웃자'고 외친다. 웃어야 돈이 되고, 성공하고, 용기도 생기며, 병도 고치는 세상이 됐다. 유머나 조크가 곧 경쟁력이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조크 한 방에 천냥 빚을 갚는다

적재적소에 터지는 조크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 상황조차 한순간에 반전시켜 준다. 불안·슬픔·증오·우울 등 인간의 비참한(?) 감정을 순식간에 바꿔주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얼음공주로 잘 알려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조크의 위력을 몸소 보여준 적이 있다. 2007년 미국 방문 때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연설하면서 날린 조크가 숙연했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았던 것. 당시 박 전 대표는 흉탄에 부모 모두를 잃었던 점을 회상하며 "인생이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났더라면'이란 책을 냈는데 그마저 팔리지 않았다. 그것도 시련이었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자칫 불우했던 가정사로 인해 우울했을 수도 있는 분위기를 한마디의 조크로 역전시킨 셈이다.

남북한 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날린 조크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희호 여사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옆자리에 앉히면서 "여기까지 오셔서 이산가족이 될 게 뭐 있습니까?"라고 말한 것. 이 한마디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회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고 김 위원장 역시 부정적이었던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었다.

흔히 '500만 분의 1 지도 하나 달랑 들고 조선소 설비자금을 얻었다'고 알려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 전 회장의 배짱 못지않게 그의 조크도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1971년 9월 조선소 설비자금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정 회장이 마침내 영국 버클레이 은행의 부총재와 면담하게 됐을 때의 일이다. 소학교만 나와 전공이 있을 리 만무한 정 회장에게 부총재가 "당신 전공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정 회장은 환한 웃음과 함께 "내 전공은 바로 그 현대조선 사업계획서요"라는 위트 있는 조크를 날렸다. 정 회장의 재치에 반한 부총재가 결국 설비자금을 내주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정 회장의 조크 한마디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인 현대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양내윤 하이소사이어티 대표는 "유머나 조크는 개그맨에게만 무기인 게 아니다. 정치인, 경영자를 비롯해서 직장인, 교육자 등 남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무기"라며 "현대 사회에서 이만큼 경쟁력 있는 무기는 없다"고 강조했다.

◆준비 없는 조크 '백전백패'

웃을 일이 없는데 어떻게 웃느냐는 부정적인 생각과 '어디 한번 네가 날 웃겨봐'하는 고압자세로는 남을 웃길 수도 자신도 웃을 수 없다. 더구나 준비 없는 조크는 성공 확률이 극히 낮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유머를 준비했다가 썰렁한 반응 때문에 머쓱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 이후에는 유머 있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기 일쑤다. 따라서 끊임없이 연습하고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노래도 애창곡이 있듯 자신이 좋아하는 조크를 자주 사용하면서 갈고닦는 것만큼 좋은 훈련도 없다는 의미다.

굳이 말로 해야 조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말주변이 없는 박희정(40) 씨는 모임이 있을 때면 꼭 유머나 조크가 적힌 메모지를 챙긴다.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과 함께 메모집을 건넵니다. 상대방이 그걸 읽으며 박장대소하게 되고 분위기는 단번에 부드러워지고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박 씨는 내성적이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떨리고 부담스럽다면 작은 메모지를 들고 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김종산 유머훈련소 소장은 피를 흘리지 않고 성을 점령한다는 '무혈입성'을 조크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다. 김 소장은 "자연스러운 웃음은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열 수 있게 한다.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충고했다.

◆잘못하면 '독'

조크가 만능열쇠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조크 한 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실없는 농담은 오히려 분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제대로 된 조크는 약이 되지만 어설픈 조크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정훈(40) 씨와 공무원인 김성수(44) 씨는 둘 다 조크의 달인이라 자부한다. 그런데 평가는 천양지차다. 이 씨는 직장에서 동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귀하신 몸이지만 김 씨는 오히려 직장 내 왕따다. 이 씨가 가급적 상대의 잘못을 감싸고 배려하거나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조크를 날리는 데 반해 김 씨는 여성 비하 발언이나 빈정거림, 신체 특성에 대한 비웃음을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좋은 유머나 조크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친밀감을 줘 행복한 일체감을 느끼게 하지만 나쁜 유머는 상대를 깎아내려 고통과 거리감을 주게 된다. 상대방은 물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조크는 안 하는 게 오히려 득이 된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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