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환자들이 많이 찾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저 열심히 진료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는 천천히 삶을 반추하는 듯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때엔 공명심, 명예욕이 많았죠. 의욕적이다보니 예기치 않은 실수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고, 더 나은 치료법을 찾게 됐습니다. 조금 덜 공격적인 치료를 찾다보니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더군요."
2006년 2월 문을 연 대구가톨릭대병원 심장센터. 61병상 규모의 병실과 3차원 디지털 혈관촬영기를 비롯한 혈관내초음파기기 등을 갖추고 있으며, 2008년 영남지역에서 유일하게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급성 심근경색증 우수의료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간 500례에 그치던 심장시술 건수는 심장센터 설립 후 연간 2천례로 늘었다. 심장센터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대구가톨릭대병원 순환기내과 김기식(57) 교수다. 한평생 심장과 함께한 그는 지금도 밤 9시 이전 퇴근을 모르고 산다.
◆집에서 저녁식사 해본 적 없어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심근경색과 협심증. 자칫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을 잃게 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이런 질병을 다루는데 '예기치 않은 실수'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혈관에 관을 집어넣어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하다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입니다. 조금 더 혈관을 넓히면 피의 흐름도 좋아지고 재발률도 떨어지죠. 게다가 환자 상태나 병변에 따라 잘 찢어지는 혈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 욕심만 내서 조금 더 혈관을 넓히려다보면 혈관이 찢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젊은 시절엔 혈관만 보였는데 지금은 환자가 보인다고 했다. "환자에 따라 어떤 치료법이 최선이자 최적일 지 경험으로 알 수 있게 됐습니다.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졌다는 뜻이죠. 환자들의 믿음이 쌓이면서 서울에서도 환자를 보내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스로가 최고는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것. 1980년대 후반 그는 처음 동산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할 각오로 관련 학회마다 쫓아다녔지만 창피만 당했다. "당시엔 동산병원뿐 아니라 대구가 심장 치료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논문 발표할 주제도 찾지 못할 때였죠. 학회도 중요하지만 학술발표가 끝난 뒤 삼삼오오 모여서 술 잔을 기울이며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도 무척 중요했는데, 여관방에 혼자 남아있어도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겁니다."
서럽기도 했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동료인 김윤년 교수(계명대 동산병원 심장내과)와 약속을 했다. 밤 11시 이전에는 절대 퇴근하지 말자고. 논문을 위해 환자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매일 환자 기록을 정리하다보니 보다 세심하게 환자를 보게 되더군요. 게다가 교수가 퇴근을 안 하고 있으니 전임의나 전공의 후배들도 퇴근을 못하고 함께 연구에 매달렸죠." 그러기를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 오랜 시간동안 김 교수는 집에서 저녁을 먹어본 적이 없다. 밤을 반납하고 오로지 연구와 보다 나은 치료법 찾기에 매달렸다.
◆급성 심근경색, 빨리 병원으로
원래 의사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법대나 사학과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외과의사였던 부친의 뜻에 따라 의대로 진로를 바꾸었다. 처음엔 적성에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차츰 좋아지더군요. 누군가의 상처를 돌본다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졸업 후 의사가 돼서 환자를 돌보면서 '이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라고 느끼게 됐죠." 대학시절 은사는 그에게 소화기내과를 추천했다.
하지만 왠지 심장이 끌렸다. 심장을 치료하던 약물도 제한적이었고, 혈관확장술도 이제 겨우 도입되던 때였다. "일부러 은사님 보여드리려고 심장 책만 들고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인생의 전환점을 묻자 그는 일본 연수시절을 이야기했다. 비록 한 달의 짧은 연수였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변두리 작은 병원이지만 심장 특화병원이어서 환자가 무척 많았다고 했다. 혈관확장술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6살 많은 일본인 의사는 첫 외국인 제자를 배려했다. 바로 옆에 앉아서 직접 혈관확장술을 지도해주었다. 이후에도 새로운 시술이 나올 때면 매년 김 교수를 초대해 실시간 시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병원에서 심장초음파 관련 연수를 하기도 했다.
"급성 심근경색의 경우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오는게 중요합니다. 지금은 병원에 도착해서 진단 후 풍선을 삽입해 혈관을 확장하는데까지 대개 60분 이내에 끝납니다." 과거 15% 이상 사망률을 보이던 급성 심근경색이 이런 빠른 조치 덕분에 5% 이하로 떨어졌다.
◆논문 150여편…SCI급 50여편
김 교수는 심장에 이상이 생겼더라도 이후 환자가 어떻게 건강을 돌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10년 전쯤 50대 남자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사업가였는데 스트레스도 심했고 건강도 거의 돌보지 않았죠.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왔기에 진단해 봤더니 심장을 둘러싼 관상동맥 3개가 다 거의 막혀있는 상태였습니다. 당뇨에 고혈압도 있었고, 폐부종까지 왔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하더군요. 가장 가늘고 부드러운 풍선과 약물로 겨우 혈관을 넓혔습니다. 일단 생명은 건진 셈이었죠."
죽음의 문턱까지 왔던 환자는 이후 사업을 접고 귀농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진단을 받으러 찾아온다. "놀라울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이감이 느껴질 정도였죠. 스스로 건강을 관리한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150여 편의 학술 논문을 국외 및 국내 학술지에 게재했다. 50편가량은 SCI급 해외 저명학술지에 실렸다. 최근엔 동맥 경화증의 발생 원인과 치료를 위해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 약제 중 동맥경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약제를 찾아내고 우리 전통 의학이나 민간요법에서 항동맥경화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최근 치료 방법으로 알려진 관동맥 스텐트 삽입술에 관련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며, CT를 이용해 증상이 없는 환자의 동맥 경화 조기 진단법 연구도 진행 중이다.
국내 학회를 이끄는 유명 교수가 됐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의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새로운 문제를 낳더군요. 의사는 결코 자만하거나 방심해선 안됩니다. 그것이 의사 자신을 위하는 길이고, 바로 환자를 위한 길입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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