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유방암 환자인 미숙(가명·38) 씨는 평온관 거실에 나와서 아침부터 엉엉 울고 있었다. 너무도 서글피 울어서, 의사 가운도 갈아입지 않고 그녀 옆에 펄썩 앉았다. 어제 맞은 링거가 잘못 들어가서 그 부위가 볼록 부어서 울고 있었다. 그녀는 10년 전 유방암을 진단 받았다. 수술도 하고, 항암치료도 씩씩하게 잘 했다.
긴 머리카락도 척추 뼈도 암에게 내어주고, 예쁜 딸과 남편을 위해 열심히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폐까지 암이 전이돼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그녀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이러한 병력이 있는 환자에게 호스피스의사는 잘못하면 '죽음의 사자'로 보일 수 있다. 병실 밖에도 잘 나오지 않는 미숙 씨에게 나는 의학적 접근부터 했다. 우선 통증과 숨이 차는 증상부터 조절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미숙 씨의 발병(發病) 전 성격이 어떤지 물어 보았다. 쾌활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깊은 아내였다고 했다.
호스피스의사가 하는 일은 발병 전 성격을 찾아 주는 일이다. 입원한 지 10일쯤 지나자 통증 없이 잘 지내고, 병실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대성통곡하는 미숙 씨에게 "링거가 조금 부었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환자는 잘 없어요. 링거를 잘못 들어가게 한 간호사가 미운 것이 아니라, 또 나쁜 것이 다가 올까 봐 무서운 거지요? 그 부위는 더운 수건으로 찜질하면 곧 좋아져요. 걱정하면서 출근한 남편에게 괜찮다고 문자할까요? 나하고 같이 행복하게 아침을 시작해요." 건강 검진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녀가 방긋 웃어주었다.
어설픈 나의 위로가 힘이 되었나 보다. 수요일 김녕 선생님이 하는 '행복한 노래교실'에 참여해서 '무조건'을 열창했다. 산소를 떼고는 화장실도 못가는 미숙 씨지만, 밝은 노래로 평온관 식구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처음 입원 했을 때 그녀는 노래교실이 시끄럽다고 귀마개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작은 식당을 한다. 저녁에는 평온관으로 퇴근해서 간병사와 교대하는 힘든 생활을 한다. 우리끼리 행복한 것이 미안해서, 미숙 씨 남편에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휴대폰 사진으로 전송했다. "아마 '무조건'을 불렀겠죠.ㅎㅎ"라고 답이 왔다.
호스피스병동 생활은 영화 '하모니'와 비슷하다. 어두운 청주 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나오는 나문희 씨(전직 음대교수)는 하모니라는 합창단을 구성한다. 그녀는 사형되기 직전까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였다. 죽음은 호스피스 병동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밥을 먹다가도 가자고 하면 가야하고, 운전을 하다가도 가자고 찾아오면 따라 가야한다. 행복하게 죽어가는 방법은 없어도, 서로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많다. 평온관에서는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가진 채, 서로에게 행복을 처방해 주고 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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