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극만 성공하고 희극만 만들고…대구 공연 딜레마

가벼운 소재만 흥행몰이…희극 일변도 우려 제기

대구 공연계에 희극만 있고 비극은 없다. 가벼운 소재만 잘 나가고 심각한 것은 흥행이 안 된다.

얼마 전에 1차 공연을 마친 창작 뮤지컬 '미용명가'가 희극이다. 그전에 공연한 창작 뮤지컬 '약방문 탈취작전'도, '1224'도 모두 희극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우려해 대구시립극단이 정기공연 소재로 희극이지만 셰익스피어 원작의 정통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택했다.

9월부터 10월에 걸쳐 열린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에서도 심각한 소재의 연극은 한마디로 '파리를 날렸다'. 한 관객은 "객석에서 앉아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관객과 배우를 합해 10명이 안 되었다"고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박현순 대구연극협회장은 "독서량이 줄고 활자 매체를 멀리하는 요즘 세태에서 무겁고 심각한 주제는 외면하거나 거리를 두려 하는 것 같다"며 "아무리 문학적으로 뛰어나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에는 아예 접근하지 않는다.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기형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회장은 이어 "공연 작품을 선택할 때 주어진 것을 보는 데서 벗어나 내 마음에 들고 보고 싶은 것을 주체적으로 취사선택하는 쪽으로, 즉 공급자 위주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이유"라고 했다. 이러다가 연극이 3류 막장 드라마나 개그 콘서트와 비슷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는 것이다.

문무학 대구예총 회장도 "고생과 고민, 번뇌 등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공연의 주요 고객층이 된 것도 이유"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희극 일변도의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문 회장은 "공연계가 흥행을 의식해 너무 재미만 추구하는 작품을 하면서 정통 연극의 맥을 이어가야 하는 점을 소홀하게 돼 작품의 질이 오히려 낮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예술의 영속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 회장은 "심각하다고 관객이 안 오는 것은 아니다. 재미가 꼭 웃음이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잘못이다. 눈물도 재미가 있을 수 있고 비극은 비극대로 재미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연 제작자나 배우 등 관계자들의 노력 부족이 희극 일변도 시장이 형성되는 데 한몫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회장은 "심각한 주제도 수준이 높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고 재미가 있으면 관객들이 찾는데 그렇지 못한 작품이 더 많은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이 의견에는 문 회장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다만 소극장용 뮤지컬은 태생적으로 무거울 수 없다는 데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거의 같았다. 노래가 가미될 경우 슬프게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다 관객과 배우들의 교감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극장에서 슬프고 무거운 주제를 선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비극보다는 희극이 만들기가 쉽다는 점도 있다. 사회성도 짙고 감동도 주면서 흥행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은 코미디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미용명가' 연출자인 극단 뉴컴퍼니의 이상원 감독도 "당분간 심각한 작품은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심각한데 자기 돈 들여 공연장에 와서 심각한 작품을 감상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답은 바로 나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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