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신세계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국내 빅3 대형마트들은 '10원 전쟁'에 돌입했다. 품질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해주겠다는 그럴듯한 이유에서다. '최저가' '초특가'도 빠지지 않는 문구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교묘한 상술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일 뿐, 결국은 전체적인 소비구조를 왜곡시켜 소비자들에게 비용으로 전가시킨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대형마트 '할인'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소비자 현혹하는 미끼상품=올 초부터 대형마트들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여왔다. 신세계 이마트에서 처음 시작한 이 '10원 전쟁'은 삼겹살, 라면, 갈치, 꽃게, 배추 등 한 종류의 아이템을 내세워 초특가에 대량의 물량공세를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초특가 상품'이라고 광고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정작 고객들은 이 상품을 구경조차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오전 한때 반짝 상품을 판매했을 뿐, 광고를 보고 이를 찾아온 고객들은 결국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 지난 주말에도 한 대형마트에서는 배추 한 통에 1천500원에 판매한다고 광고했지만, 정작 오후 시간에는 배추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날 마트를 찾았던 김유주(37·여) 씨는 "대형마트에서 특가 제품이라고 광고할 때마다 달려오지만, 정말 기대했던 물건을 사 본 적은 단 한 번이었다"며 "늘 미끼상품으로 대대적인 광고만 하고 충분한 물량확보는 뒷전"이라고 말했다.
이런 미끼상품은 통상 한정상품으로 선착순 판매가 특징이다. 그렇다 보니 전단을 보고 매장에 가면 이미 다 팔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결국 기왕 마트를 간 김에 같은 품목의 다른 상품을 사거나, 혹은 계획에 없던 쇼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대형마트들이 앞다퉈 경쟁적으로 특가 미끼상품을 내놓는 이유다. 미끼상품으로 잃는 손실분을 다른 상품 판매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끼상품으로 제공되는 저가 상품의 질도 문제다. 유통업체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모(38) 씨는 "미끼상품으로 제공되는 행사 상품은 가급적 사지 않는 편이 좋다"고 귀띔했다. 특가판매 행사를 진행할 경우에는 전국의 대형마트 점포에 동시다발적으로 엄청난 물량을 공급해야 하는 만큼 최소 일주일 전부터 수급 조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신선도가 크게 떨어지는 제품들이 공급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김 씨는 "싼 가격에 판매한다는 것은 그만큼 낮은 가격의 품질을 판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가장 현명하다"며 "세상에 손해 보고 장사하는 장사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1의 함정=늘 대형마트에서 '1+1' 상품을 주로 구매해왔던 배지연(30) 씨는 최근 동네 슈퍼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생활비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 씨가 생각하는 가계경제의 가장 큰 해악은 바로 1+1.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상당수의 소비자들이 1+1이라면 마치 공짜경품을 받은 것처럼 신이 나서 구매를 하지만 이 속에는 대형마트의 불편한 상술이 숨어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아챘다는 것. 배 씨는 "슈퍼에서는 야쿠르트를 1개씩 구매 가능하지만 대형마트에서는 보통 1+1으로 포장된 8개 제품을 사게 된다"며 "결국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량 구입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채 불필요한 것을 더 많이 사도록 자꾸 유혹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문옥자(39) 씨 역시 마찬가지 경험을 했다. 아이들 준비물로 4절 도화지 한 장이 필요해서 대형마트를 찾았지만 10장 한 묶음으로만 판매를 한다는 것. 한참을 망설인 문 씨는 결국 동네 문방구를 찾아 한 장에 200원에 살 수 있었다. 문 씨는 "당장 생각하면 대형마트에서는 한 장에 150원꼴에 판매하니 더 저렴한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결국 나머지 도화지는 사용하지 않은 채 집 이곳저곳을 굴러다니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라며 "낱장 구매를 통해 결국 돈 1천300원도 절약하고, 환경도 위한 셈"이라고 했다.
특히 이런 1+1 상품은 유통기한에 유의해서 구매해야 한다. 가공식품의 경우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값을 절반 깎아주더라도 물건을 소진시키는 편이 마트 입장에서는 손해를 막는 전략이기 때문에 싼 값에 마구 내놓는다는 것.
또 포장만 동일할 뿐 용량을 10~20g씩 줄여 1+1행사용으로 특별히 만들어진 상품도 상당수이기 때문에 중량까지도 꼼꼼히 비교하는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 동일한 브랜드의 즉석밥 제품이라 할지라도 200g·210g 중량의 제품이 있고 우유 역시 900㎖와 1ℓ제품이 있다. 김정희(35·여)씨는 "1+1 제품을 사면 똑같은 이름의 과자라 하더라도 용량이 3분의 2에 불과한 경우를 여러번 목격한 뒤에는 1+1에 현혹되는 일이 줄었다"며 "동일한 브랜드와 제품명, 동일한 포장의 제품이 판매처에 따라 중량이 다르다는 것은 마치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상했다"고 했다.
◆소비자 이익도 외면=대형마트의 가격 할인 행사에 대해 소비자들도 처음에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한정된 물량에 따른 품절 반복과 실질적인 혜택보다 과소비를 초래하는 부작용이 커지면서 소비자 이익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올 들어 대전소비자시민모임이 소비자 5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꼴인 69.7%가 "가격 할인 경쟁이 소비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답했다. 가격 할인 해당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58.2%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66.4%는 "다른 상품까지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됐다"고 밝혀 가격 할인 상품이 미끼상품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대형마트의 가격 할인 및 판촉행사 광고가 과소비를 조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도 57.8%에 달했다.
대형마트 가격 경쟁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서도 '소비자를 유인하는 미끼상품'(37%)이 우선 꼽혔으며 '소비자의 과소비 조장'(21.9%)이 뒤를 이었다. 이어 '매출 및 고객 감소 영세상인 몰락'(18.4%), '대형유통업체의 권력 횡포'(10,9%), '유통질서 문란'(5.1%), '유통구조 왜곡'(4%), '지역경제 쇠퇴'(2.5%) 등의 순이었다.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은 "대형마트 할인 경쟁은 결과적으로 주요 고객인 소비자와 제품을 공급하는 납품업체, 지역 중소 유통업체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술에 불과하다"며 "실질적으로 납품 협력업체와 지역 중소 유통업체와 상생하면서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확정…TK 출신 6번째 대통령 되나
김재섭, 전장연 방지법 발의…"민주당도 동의해야"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文 "이재명, 큰 박수로 축하…김경수엔 위로 보낸다"
이재명 "함께 사는 세상 만들 것"…이승만·박정희 등 묘역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