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몸, 상품으로의 가치는 어떠한가?

외모에 대한 기호적 해석 현대사회 몸의 의미 추적

외모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회적 흐름이 인간 소외를 더 부추길 수 있다. 시민들이 대구 동성로를 걷고 있다.(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매일신문 자료사진
외모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회적 흐름이 인간 소외를 더 부추길 수 있다. 시민들이 대구 동성로를 걷고 있다.(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매일신문 자료사진

이달 12, 13일 이틀간 경주에서 '글로벌 시대의 몸의 인류학'이라는 주제로 한국문화인류학회(회장 유명기 경북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2010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몸'에 대한 담론이 펼쳐졌다. 이번 학술대회는 종교와 노화, 폭력,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와 연관된 몸의 세계를 다뤘는데 눈길을 끄는 주제를 정리해봤다.

◆'나 주식회사'에 매몰된 내면

김고연주 박사(연세대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는 외모를 가꾸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으로 변질된 현 세태를 꼬집는 '나 주식회사와 외모 관리'라는 주제 발표를 했다. 김 박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자신이 어떤 사림인지를 외모를 통해 보여준다"고 했다. 외모는 개인의 가치관과 자기 통제, 자기 확신 등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응축된 상징 기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라는 존재는 상품이고 이것은 곧 '나 주식회사'라는 것이다. 나 주식회사는 어떤 상품을 소비하는가에 따라 자신을 알리고 상대방을 이해한다. 김 박사는 "이제는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기 위해 명품 코트나 명품 구두를 사는 것을 넘어 명품 몸매나 명품 피부 등 자기 관리를 의미하는 몸을 갖춰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자기 관리가 중요해지자 기존 페미니즘은 정치성이 빠진 '상품 페미니즘'으로까지 변질됐다. 개인에게 있어 정치적 자아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신에게 몰두하는 나르시시즘적 자아가 대체한다.

문제는 이처럼 개인화된 개인은 혼자가 편하고 다른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도구적 관계에 익숙함에 따라 내면보다 외모를 보고 인간관계를 맺는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제 외모가 훌륭한 사람은 '훈남'이나 '훈녀'라고 하면서 내면까지도 아름답다는 '외모 결정론'이 득세하고 있다. 김 박사는 "인간성마저 외모에 압도당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삶을 살고 있다"며 "관계의 회복과 가치의 전환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외모는 뛰어나도 성격은 괴팍한 '아름다운 괴물'들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 종묘 공원의 '몸짓 문화'

서울 도심의 종묘공원. 이곳은 3년 전만 해도 노년 남성들의 '몸짓 문화'가 '흐드러지게' 폈던 곳이었다. 이동식 노래방 기계에서 흘러간 노래가 쏟아져나오고 술에 취한 노년 남성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또 '박카스 아줌마'로 불리는 성노동 여성들의 활동 등도 이뤄져 종묘공원은 이른바 '노인들의 해방구'로 여겨졌다. 하지만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이 같은 몸짓 문화는 '무질서' 행위로 규정돼 금지당하고 공원은 성역화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노년의 과도한 욕망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또 당국의 성역화 조치는 올바른 것인가.

정진웅 교수(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는 "몸은 단순히 정신에 종속된 덩어리가 아닌 불안정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발표했다. 어떠한 사회적 힘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몸이 무한정 변화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종묘공원을 찾는 노년 남성들의 대부분은 '계급적'으로 낮은 위치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고 '세대적'으로도 '촌스러운' 문화를 지닌 '노인'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노인'이라는 호칭은 남성으로서의 영향력과 젊음이 거세된 '익명의 존재'들을 지칭한다. '별 볼일 없는 노년'에 대한 이러한 비하적 시선은 거의 모든 종류의 사회적 소수자를 지배 문화가 정형화하는 방식이다. 종묘공원에서의 노년들의 '고성방가'나 '음주가무'는 비슷한 세대의 경험과 감수성을 공유하는 몸짓의 언어지만 사람들은 이를 단순히 퇴폐적인 풍기문란으로 여긴다. 정 교수는 "만약 종묘공원에서 대학생들이 모여 '실험적 청년문화'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어도 이같이 규정할까"라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종묘공원 '성역화'는 노년들의 몸에 행사되는 통제력이라고 규정했다. 종묘공원 노년 남성들의 몸짓 문화는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지배 문화의 연령주의나 계급적, 세대적 질서와 규칙을 교란시키고 이에 지배 권력은 성역화 작업을 통해 노년 남성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종묘공원 노년 남성들의 '정신'은 어느 정도 권력에 복속돼 있지만 몸으로 드러난 정체성은 권력에 복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