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사춘기 청춘들의 꿈

모 대학교수 한 분은 고교 시절 꿈이 조폭이었다고 했다. 대학교수의 꿈이 깡패였다니 선뜻 믿기 어려운 일. 그는 고교 때 소위 학교 깡패였다. 폭력으로 정학도 당하고, 피해 학생과 합의를 보느라 부모님도 골치였다. 그는 인근에 세력을 튼 한 조직 폭력배의 일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치장에 갇혔는데 거기에 그 조직원이 있었다. 그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큰 충격을 받고 꿈을 접었다. 그렇게 추종하던 그 조직원이 자장면 한 그릇을 먹겠다고 경찰에게 아부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 길로 그는 공부에 매진했다. 미국 뉴욕에 유학까지 다녀와 교수로 임용됐다.

학창 시절은 모든 것이 결핍의 시대다. 꿈은 아직 모양새를 이루지 못하고, 바람도 길을 잡지 못하고, 지식은 얕고 감성은 한쪽으로 기울었고, 경험은 일천하다. 이런 가운데 시험이란 거대한 압박은 심리적으로 심대한 불균형을 초래한다. 오늘 수능시험을 친 수험생이나 학부모들도 초긴장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학창 시절 뒤틀린 꿈에 대한 영화는 많다.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거대한 힘에 맞서려는 본능적 폭력을 그린 영화도 있고 '강철중:공공의 적 1-1'처럼 폭력에 이용만 되는 영화도 있다. 최근작 중에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성장담을 그린 영화 중 인상적인 것이 이성한 감독의 '바람'(2009년)이다.

부산 서면을 배경으로 실업계 학교에 다니는 짱구(정우)가 주인공이다. 엄한 아버지와 동생을 힘으로 다루려는 모범생 형, 공부 잘하는 누나를 둔 집안의 막내다. 집에서 유일하게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고 있다.

형 덕분에 편한 중학 시절을 보냈지만 상고는 다르다. 약육강식이 살아 숨쉬는 거친 정글이다. 입학 첫날 불법 서클 몬스터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한다. 뒷자리에서 애들이나 괴롭히던 그가 학교 폭력으로 유치장 신세를 지고, 몬스터에 영입된다. 폼나게 살고 싶었던 그의 '바람'대로 예쁜 여자친구도 얻고, 후배들에게 "형님!"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바람'은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의 꿈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가족과 나 자신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간경화로 숨을 거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한 것이 눈물 나도록 후회스럽다.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속은 아직 여린 사춘기의 성장담을 감독은 유쾌한 에피소드와 무명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로 잘 표현하고 있다. 흡연을 비롯해 학교 묘사가 직설적인 것이 흠이지만 수능시험을 친 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남학생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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