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술이 도시를 살린다] ⑤통영 동피랑 마을

산비탈 작은 골목, 벽화로 채색…유쾌한 상상이 '동화속 명소'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던 통영 동피랑 마을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하루 최고 5천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던 통영 동피랑 마을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하루 최고 5천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동피랑. '동쪽에 있는 비탈'이란 뜻의 통영 사투리다. 이름처럼 정겨운 이 산동네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겯고 사는 동네였다. 통영항에 고기잡이 배가 돌아올 즈음이면 아낙들이 동네 어귀에 나와 남편을 기다리던, 어촌의 평범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2007년, 통영시는 동피랑 마을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마을 사람들은 막연히 두려웠다.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던 윤미숙 푸른통영21 사무국장은 '벽화'를 떠올렸다. 윤 사무국장은 2008년 공모전 '제 1회 전국 골목 벽화전'을 개최, 마을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국 19개 팀이 참가해 벽화를 그렸다. 벽화가 완성되자 동피랑 마을은 순식간에 전국적 명소로 떠올랐다. 올해 8월엔 하루 5천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평일에도 하루 300~400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 23가구 5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발디딜틈 없이 관광객들로 꽉 찼다.

올해 벽화 공모전에는 전국에서 총 50여 개 팀들이 참가했다. 이들의 면모는 공공미술 전문팀부터 인터넷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파워 블로거, 초상화 전문가, 학생, 통영 시민 등 다양했다. 벽화가 낡고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2년 후 실시한 공모전은 전국의 이목을 새롭게 끌어 모았다.

이들이 만들어낸 벽화는 다양하다. 마을 사람들의 꿈이 저마다 다르듯, 벽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는 올해 벽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 사람들을 반긴다. 동피랑 마을 아낙들이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그 자리에, 만선의 꿈을 담은 벽화가 그려졌다. 붉은 바다 위에 고기를 가득 실은 배들이 흥에 넘쳐 넘실대는 그림은 동피랑의 옛 꿈을 상기시켜준다.

동피랑 마을의 골목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화사하고 이국적인 꽃도 만나고, 윤이상의 초상화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의 옛 놀이를 그린 그림 앞에선 웃음이 난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 그림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린 왕자와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폰지밥이 함께 노는 유쾌한 상상도 있다. 마을 방문객들은 저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바쁘다. 구미의 직장에서 단체로 야유회를 왔다는 도정희(24·대구 동구 신암동) 씨는 "직장 동료 15명이 함께 왔는데, 풍경도 좋고 사진도 예쁘게 잘 나와 모두들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울산문인협회 소속으로 문학 기행을 온 임정두(48·울산 동구 화정동) 씨도 "유치환, 박경리 등의 발자취를 느끼고 싶어 통영에 왔는데 벽화가 있는 아름다운 풍경까지 볼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

동피랑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간단한 체험 행사도 할 수 있다. 비영리단체 '사람과 삶' 정신영 간사는 마을의 '쌈지 교육장'을 지키고 있다. 6㎡(2평) 남짓한 그 공간에는 통영의 특산물인 옻칠 공예전이 전시되고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 등도 진행한다. 정 간사는 "주말이면 가족 단위 관람객이 특히 많이 찾는다"고 덧붙였다.

동피랑 마을은 통영의 주요 해산물 시장인 중앙시장과 5분 거리. 동피랑 마을의 성공 이후 중앙 시장에도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 푸른통영21 위관옥 간사는 "중앙시장을 오가는 관광객들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지만, 동피랑 마을의 벽화 공모전 이후로 젊은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젊은 관광객들의 유입이 많아졌다는 것.

마을 구판장을 지키고 있는 주민 박부임(60) 씨는 "사람 그림자 보기 힘들었던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니 활기가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외지인들은 마을 노인들의 일상에 일방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한편 지붕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시끄럽게 떠들어 주민들이 겪는 불편도 만만치 않다. 하루 수백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지만 마을 주민의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마을 구판장 수입이 고작이다. 푸른통영21 윤 사무국장은 "마을 벽화에 대한 저작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면 마을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텐데 아직 통영시의 적극적인 투자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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