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대구 서구 이현동 ㈜서광무역 염색공장. '안전이 최우선이다'라는 간판 아래 직원들이 바쁘게 오갔다. 염색기를 점검하고 원단을 지게차로 실어 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검사 라인 김명숙(46·여) 씨의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16세에 이 일을 시작해 벌써 3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쌓여 가면서 '검사의 달인'이란 별명도 붙었다. "기계가 좋아져서 그렇지 달인은 아니야." 그러나 기계 덕분이라는 그의 말과는 달리 기자가 검사 일에 도전한 지 1분이 지나지 않아 눈이 아프기 시작했다. 염색을 마친 너비 1m, 길이 50m 원단이 40cm 간격으로 나란히 박힌 두 개의 도르래를 타고 빠르게 감겼다. 50m 천이 다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3초. 찰나에 찢어진 데나 염색이 덜된 곳 등 불량을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달인이 아니고서야 일반인은 엄두도 못내는 일이었다. "눈으로 위아래를 훑고 동시에 도르래에 감기는 원단에 손을 가져가 불량을 살피는 게 관건이에요." 김 씨는 "30년간 시행착오를 겪어 얻은 소중한 노하우"라며 웃었다. 초기 원단에 이물질을 없애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원단을 쪄내는 축소 라인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대뜸 "행복해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경력 4년 차인 인도네시아 술라이만(33) 씨는 어눌한 발음으로 "공장에 약품 냄새가 안 난다"며 "직원들이 다들 잘해 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3년 일하고 잠시 귀국했다 회사가 좋아 재입사 한 경우다. 5년째 일하고 있는 아디(32·인도네시아) 씨도 마찬가지. 이곳에서 고향의 가족들을 부양하고 돈을 벌어 주유소를 차릴 꿈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이날 둘러본 서광무역은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지만 모두가 활기찼다.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라는 사훈처럼 전 직원이 똘똘 뭉쳐 있다. 1993년 서광무역 설립 이후 보통 9년 이상 장기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다. 이런 애사심은 오늘 서광무역에게 한 차례 불어 닥친 시련을 견디는 원동력이자 미래 성장 에너지다. 규모는 작지만 이 회사가 중견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서광무역은 생산 제품 전량을 유럽·북남미·중동 등지 세계 시장으로 수출한다. 다른 섬유 업체들이 수출단가로 인한 채산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허덕이는 사이 서광무역은 브라질와 멕시코 등 신흥 시장을 뚫고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새로 도입한 편직 공정 시스템을 통해 짧은 기간 해외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기존 섬유 생산 업체와 차별화된 가장 큰 특징은 시가공에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한다는 것. 덕분에 울(wool) 촉감을 가진 직물, fancy 직물, non-spandex형 신축성 직물 등을 줄줄이 출시한 데다 대만, 중국, 프랑스 직물보다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직물을 개발,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 10월 뉴밀레니엄 선도 기업, 벤처기업(신기술분야)에 선정됐고 2000년 10월에는 신기술 개발에 대한 성과로 신지식인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어 올해 7월 기업회생절차 속에서도 FTA 업체별 원산지 수출자 인증을 지역 섬유업계 최초로 획득하는 등 다른 기업의 귀감이 되고 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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