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만 열면 교통지옥¨ "좀 막히면 어때" 배짱장사

[대형마트 끊고 살기] <5> 도심교통 마비시키는 유통공룡

1997년 대구 북구 칠성동 홈플러스가 대구 도심에 상륙한 지 14년여가 흐른 현재 19개 대형마트 군단(?)이 주요 교통요지, 도심 번화가를 점령했다. 그동안 이들이 폐허로 만든 것은 비단 지역 경제뿐만이 아니었다. 도심 교통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많은 시민들이 교통 지·정체로 인한 물적·시간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유통공룡은 그런 것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했다.

◆교통대란 부른 유통공룡

지난 주말이었던 13일 오후 5시 30분 대구 북구 침산동 남침산네거리. 북구청 쪽으로 좌회전 신호가 떨어지자 좌회전 차량과 이마트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차량이 뒤엉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게다가 반대편에서 유턴을 받으려는 차량까지 맞물려 일대는 차량에서 내뿜는 경적소리로 가득했다. 반대편에서 교통섬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차량도 교통 혼잡을 부추겼다. 이마트 지하 주차장 입구도 마찬가지. 편도 3차로 바깥쪽 도로는 이미 주차장에 진입하려고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 줄이 50m 이상 늘어섰다. 시민 김성훈(33) 씨는 "이마트 때문에 주말이 되면 이 일대가 교통지옥으로 변한다"며 "접촉사고도 빈발하지만 길가에는 차량 정리를 위한 마트 직원 한 명도 안 나온다"고 했다.

상호를 둘러싸고 개점 전부터 동구청과 갈등을 빚었던 동구 율하동 롯데쇼핑프라자도 엄청난 개점 후폭풍을 몰고오고 있다. 같은 날 찾은 롯데쇼핑프라자 앞 '안심로' 주변도로는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개점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교통혼잡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롯데쇼핑프라자 뒤편에 2012년 2월 입주예정인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선수촌 아파트(1천18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교통난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결국 대구 도심에 속속 들어선 대형마트로 인해 도심의 교통질이 나빠진 것이다. 허가제 당시 상업지역에만 출점이 가능했던 대형마트의 경우 1997년부터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등록제로 바뀌면서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 준주거지역 등에 상관없이 건축허가 요건만 갖추면 도심 진입이 가능해진 탓이다.

대구시는 2006년 뒤늦게 4차 순환로 안에는 대형마트가 신규 출점하지 못하도록 규제했지만 이때는 이미 홈플러스 황금점 등 신규로 문을 여는 점포들의 교통영향평가가 모두 끝난 상황. 안방을 모두 내주고 난 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대형마트의 시내 집중은 전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다. 도심 교통 혼잡과 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미국은 시 외곽을 따라 창고 형태의 대형마트 벨트를 형성하고 있고, 도심은 백화점과 그 주변에 소규모 상권이 집중돼 있다. 일본 역시 도심에는 소규모 유통업체 차지다.

◆하나마나한 교통평가

대구시는 국토해양부 지침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향후 1년과 5년, 두 차례만 교통량을 예측하도록 지침에 명시돼 있어 당장 5년만 괜찮으면 'OK'라는 것. 결국 10, 20년 후에 다가올 교통 혼잡을 규제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실제로 1997년 문을 연 홈플러스 대구점은 '5년 규정'에 따라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만 교통영향평가를 했다. 이 평가 결과 2001년 홈플러스 인근의 침산네거리 지체도(네거리 신호대기 시간)는 43초, 남침산네거리는 145.1초로 조사됐다. 그러나 2002년 홈플러스 인근에 이마트 칠성점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마트 칠성점이 실시한 2003년 교통영향평가 결과에서는 침산네거리 69초, 남침산네거리 184.8초로 분석된 것이다. 2007년 분석에서는 침산네거리 90.7초, 남침산네거리 292.8초로 나타났다. 결국, 2007년 침산네거리와 남침산네거리 지체도는 2001년 홈플러스 분석 때보다 각각 2.10배와 2.01배나 늘어났다.

이에 반해 옆 동네인 광주, 대전 등은 엄격한 교통량 분석을 통해 유통공룡을 길들이고 있다. 대전은 대형마트가 출점 때 제출하는 교통영향평가서에 향후 교통량 증가량을 구시가지는 10년, 신시가지는 15년까지 예측하도록 하고 있다.

주기적인 재평가를 통해 인근 교통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광주의 경우 대형마트 첫 등장 이후 5년이 지난 2002년 모든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재평가를 실시,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대구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재평가를 하지 않았다.

교통영향평가 대행자를 대형마트 스스로 지정하는 것도 문제점이라는 지적이다. 한 교통영향평가 대행업체 관계자는 "다양한 기업의 교통영향평가를 수행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과 기준은 마련돼 있지만 아무래도 교평 발주자(사업주)의 입김이 작용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학계,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은 사후관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관 중구청 교통과 교통공학박사는 "대형마트는 사업이 잘 되면 잘 될수록 교통영향평가보다 교통량이 늘어날 개연성이 있다"며 "5년, 10년, 15년 등으로 나눠 재교평을 실시하고 부실했을 땐 엄격한 페널티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기혁 계명대 교수는 "교통은 공공의 자산이기 때문에 재평가를 의무화해야 하고 책임제도를 명시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국가 및 지자체, 사업자의 책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처벌규정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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