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회환경 개선없이 여성의 낙태 통제 옳지않다"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학술 심포지엄 '여성의 몸과 출산권'

12일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주최로
12일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주최로 '여성의 몸과 출산권'을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여성의 몸' '출산권' '낙태'를 키워드로 페미니스트 연구자들과 법학자들이 토론을 벌였다.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김종세 계명대 법학과 교수
김종세 계명대 법학과 교수
허경미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허경미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낙태'는 이 시대 뜨거운 화두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불법 낙태 시술을 단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3월 보건복지부가 '불법 인공 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을 통해 불법 낙태 단속 방침을 밝힌 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성명서에서 촉발된 낙태 반대 운동은 더욱 확산됐다. 급기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하자, 산부인과들은 표면적으로 낙태 시술을 중단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인공 임신중절 수술의 허용기간을 임신 28주에서 임신 24주로 단축, 개정했다.

여성, 노동, 진보 단체 및 정당으로 구성된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는 '낙태권 요구안'을 통해 "우리가 요구하는 낙태권은 낙태를 많이 하자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고 합리적이며 건강한 조건에서 임신과 성관계, 출산, 피임,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계명대 여성학연구소는 올해 학술 심포지엄 주제로 '여성의 몸과 출산권'을 선택했다. 12일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주최로 행소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여성의 몸' '출산권' '낙태'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페미니스트 연구자들과 법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 최대 쟁점 중 하나인 저출산 문제에 대해 발표와 토론을 거쳤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김종세 계명대 법학과 교수는 '낙태와 헌법상의 근본 가치'라는 발표를 통해 "낙태할 수밖에 없는 사회 제반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국가가 나서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를 옹호하는 담론이 거의 없는 현실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주장이다. 사회 인식이 '낙태 옹호=생명 경시'라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다양한 찬반론이 오갔던 것이 사실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법원의 입장은 낙태에 대한 여성 의지의 중요성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로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임신 24주 이내 낙태가 허용된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 배우자의 동의 조항은 여성의 낙태 결정에 대한 배우자의 실질적, 상징적 통제를 허용해 여성에게 선택의 우선권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미혼 여성의 출산이 사회적으로 사실상 이뤄지기 힘든데 미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낙태 수술이 국가적 관심이나 건강보험 등의 지원 없이 열악한 상황에서 불법적으로 시술되는 것도 문제 삼고 있다. 낙태의 금지와 음성화는 낙태에 대한 적절한 의료 및 사회복지체계의 구축 자체를 저해함으로써 여성이 자칫 열악한 낙태 수술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 구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이유로 출산을 원치 않는 여성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면서 "낙태 금지 및 제한적 허용이 아니라 낙태의 비범죄화와 안전한 낙태로 그 방향이 선회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에서 허경미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저출산 문제가 불거지자 낙태 문제가 급부상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사회는 출산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왔다"면서 "여성 스스로도 낙태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가 하는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배은경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교수는 '현재의 저출산이 여성들 때문일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부가하고 있는 모성 신화를 비판했다. 한국 여성들은 건강한 자녀를 출산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없으며, 자녀 교육에 신경써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또 그것을 위해 교육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돈도 벌어야 한다는 압박도 받고 있다. 이런 부담을 갖고 성공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모성과 유급 노동을 조절하거나 선택하는 전략과 협상이 요구되며, 결국은 자녀를 적게 낳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배 교수는 저출산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저출산과 결혼 지연, 회피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런 모순적 역할에 대해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강요된 합리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학술대회를 주최한 계명대 여성학과 조주현 교수는 "지금까지 산아제한정책으로 오랫동안 '낙태는 최후의 피임'으로 인식돼왔다"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찬반 입장은 있겠지만 어떤 입장이든 여성의 능동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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