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근대미술의 향기] 김호룡 풍경화

일회적인 경쾌하고 빠른 붓질…조화로운 색조의 광활한 풍경

▲김호룡(1904~1957), 풍경, 캔버스에 유채, 38×45.5㎝, 1941
▲김호룡(1904~1957), 풍경, 캔버스에 유채, 38×45.5㎝, 1941

1928년 5월 14일자 동아일보는 그해 제7회 조선미전에 입선한 대구 인사들에 관한 기사를 실었는데 서양화와 사군자 분야에서 모두 5명이 있었다. 그 중 당시 26세의 김호룡은 "작년에 이은 두 번째 입선이며 지금 동경미술학교 5학년에 수학 중"인 것으로 소개되었다. 이듬해 11월 30일자 조선일보에서 다시 그의 귀국 사실과 개인전 소식을 전하는 단신 기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대구제일심상소학교에서 대구교육회 주최로 올해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김호룡의 작품전이 개최된다"는 것과 "지난봄에는 일본 제전에도 입선한 바가 있으며 동경 풍경과 인물화 등 50여 점으로 전람회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1993년 '대구 서양화 도입 70주년'이란 부제와 함께 MBC에 의해 '향토 작고 서양화가 유작전'이 열렸을 때 그의 작품은 겨우 2점이 출품되었고 그것도 당시 권원순 교수에 의해 처음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지금까지 드러난 작품은 전부해야 5점이 넘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희소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 음악 분야에서의 그의 활동이 함께 조명되면서 이 작가의 개성과 이색적인 경력의 전모가 조금씩 밝혀져 잊힌 듯했던 한 예술가의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까지 실제로 전시되었던 그의 작품은 유화와 수채화 각각 2점씩인데 모두가 강가 아니면 바닷가 풍경이다. 넓은 모래톱이 펼쳐진 광활한 경치는 작은 강의 지류가 큰 강과 만나는 대구 인근이나 달성지역의 풍경인 것 같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낮은 연봉들과 큰 강폭이 어울린 경관을 멀리서 조망하며 붓 터치의 방향도 옆으로만 적용하여 드넓은 공간감을 강조했다. 그는 밑그림 없이 한 번에 바로 그리는 스타일을 좋아했으며 캔버스에 밑칠 작업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작품도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붓질과 함께 경쾌하면서도 장엄한 독특한 정서의 기분을 전달한다.

그의 그림들에서 발견되는, 빠른 붓질로 즉석에서 그린 듯 보이는 특징들은 모두 현장에서 직접 사생한 풍경화들이란 확신을 준다. 모든 대상이 가벼운 몇 번의 붓질로 쉽게 처리되어 있다. 밑칠이 없는 흰 바탕의 캔버스와 속도감 있는 일회적인 붓놀림, 그리고 채색의 투명한 색감이 두드러지는 스타일은 그의 음악적 기질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하늘과 물빛이 서로 닮아 일체화를 이룬 색채가 다시 금빛 모래톱의 밝은 색과 어울려 이룬 한색과 난색의 조화는, 단조로운 구도의 이 풍경화에 붓질에서 감각되는 동세와 함께 더없는 활기를 불어넣는다.

김영동(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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