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학습 클리닉을 찾아온다. "사실 이런 곳에 굳이 올 필요는 없는데,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그다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고…"라며 구구절절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는 부모도 있고, 그간 답답했던 심정을 솔직하게 하소연하는 부모도 있다. 학습 클리닉이라는 곳이 결국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 정신 상태에 관한 분야이고, '정신'에 관한 문제라면 괜히 이상한 사람처럼 비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학습심리평가를 해 보면,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학습 기제의 복잡성은 학습자의 특성에 따라 아주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심리평가를 실시한다고 해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행동을 모두 설명해내기는 어렵지만 부모의 양육 태도나 부모-자녀 관계가 자녀의 성취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부모들이 대체로 갖고 있는 문제점은 '성적만 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인식이다. 성적을 올릴 수만 있다면 어떤 조치든 취해야 한다고 믿으며, 자녀가 갖고 있는 다른 생각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학습 부진의 원인이 부모 자신에게도 있다는 진단 결과가 나오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화를 벌컥 내는 사람도 있다. '자식 뒷바라지 이만큼 해줬으면 됐지, 다른 집 아이들은 잘만 하는 공부를 제 놈이 무엇이 불만이고, 무엇이 부족해서 못한다는 말이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처한 문제, 자녀가 느끼는 중압감, 자녀의 심리 상태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밀어붙여 공부하라고 강요하기 전에 내 자녀를 바로 보자. 모든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한 사람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지극히 한정적이라 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만능인'은 극히 드물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만능인'이 내 자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자녀들에게 행복하게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주는 것이 바른 진로 선택이다. 자녀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해 주기만 해도 분명히 자녀는 달라진다. '너는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기 전에 무엇을(목적), 어떻게(수단)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부모가 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네가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이냐?"라고 따져 묻기 전에 자녀의 내적 심리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배려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김지애<인지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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