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악(惡)의 당당함

서부 영화에서 이발소는 언제 어느 때 격렬한 총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장이다. 헨리 폰다가 악역으로 나온 어느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는 면도를 하기 위해 이발소에 간다. 자신을 죽이려는 총잡이가 면도사로 위장해 기다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날카로운 면도날 아래에 태연하게 자신의 목을 맡긴다. 무모함과 당당함이 묘하게 교차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면도를 하기 위해 입은 가운 안에 총을 숨겨 면도사를 협박하고 있긴 했다.

좀 엉뚱하긴 하지만 이 장면은 외교관 출신의 콜롬비아 작가 에르난도 테예스의 단편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을 떠올리게 한다. 면도하는 장면 때문이다. 주인공인 나는 반란군을 지지하는 이발사이다. 그는 시내에서 보란 듯이 반란군을 처형하고, 강제로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게 할 정도로 잔인하다. 누구라도 그를 죽이고 싶어했고, 나도 기회만 온다면 그를 죽이고 싶었다.

어느 날 그가 면도를 해달라며 이발관을 찾아왔다. 날이 시퍼렇게 선 면도날을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그는 아무 눈치도 못 차리고 농담까지 하지만 나는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한다. 면도가 끝나자 그는 돈을 치르면서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사람들은 자네가 날 죽일 거라고 했어. 그 말이 정말인지 알고 싶어 왔어.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명심해."

단지 영화와 소설에서나 가능한 터무니 없는 장면일 뿐이라고 지나치기에는 좀 찜찜하다. 만용에 가까운 이러한 악(惡)의 당당함은 현실에서도 흔치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북한의 행태를 보면 꼭 이렇다. 올해만 해도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원심 분리기를 설치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했다. 또 어제는 연평도를 무차별 폭격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고는 우리의 도발에 대한 응전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강력 응징 방침을 밝혔지만 그 방법이 마땅찮다. 자칫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이라면 감독이나 작가가 권선징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다소 쉽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선이나 정의가 늘 승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악의 당당함이 더 위세를 떨치는 때가 더 많다.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미친 막가파를 상대하기란 이렇게 힘든 법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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