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한(前漢)시대 3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사기(史記)를 보면 '원교근공'(遠交近功)이라는 말이 있다. 힘을 키우기 위해 먼 나라와 가까이한다는 뜻.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스런 시기나 힘의 균형이 팽팽한 상황일 때 뽑게 되는 전략적 카드 중 하나다. 비단 정치 외교적인 비유가 될 뿐 아니라 기업의 경우도 눈을 밖으로 돌려 내실을 강화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원교근공'이라는 선대(先代)의 가르침을 적극 받아들이기라도 하듯 중국의 해외시장 진출이 눈부시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영 석유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규모는 올해 246억 달러로 석유와 가스 부문 글로벌 M&A의 약 5분의 1을 차지했다.
중국의 해외시장 진출은 한국증권거래소(KRX)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7년부터 해외기업이 들어오기 시작한 우리나라 증권시장에는 현재 16개 외국기업이 상장돼 있으며, 그 중 14개가 중국기업이다. 특히 최근 2년 사이 12개 기업이 상장됐고 증가세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상장주관사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증권거래소 상장을 협의 중인 해외기업이 70여 개에 달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내년에는 외국기업의 상장 소식이 분명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증권시장의 세계화는 우리나라 경제 글로벌리제이션의 바로미터라고도 볼 수 있는 만큼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중국기업들이 우리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반대의 경우를 살펴보자.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는 한 일반인들은 쉽게 접하기 힘든 일이지만 한국기업들도 해외증시에 상장된 케이스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증권시장에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상장돼 있으며 필자가 근무하는 STX그룹도 STX팬오션과 STX유럽 OSV부문을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시켰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기업의 해외증시 진출 사례가 30여 건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불철주야 해외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노력과 성과를 감안하면 한참 모자란 숫자다.
기업공개라는 것,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일은 곧 기업의 가치를 알리는 일인만큼 어느 나라, 어느 시장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려면 자본금과 매출이 각각 100억원, 300억원 이상이 돼야하는 등 상장요건이 만만치 않다. 상장을 진행하는 비용이나 기타 유지비용, 상장규정에 따른 인적'제도적 부담이 추가되는 것은 물론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면 이런 부담감은 더하다. 대개 선진국일수록, 규모가 큰 증권시장일수록 기업공개(IPO)는 그 절차와 운영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경향이 있다. 이는 투자자의 권익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세분화돼 있다는 이야기이며 해외증시 상장사례가 가뭄에 콩 나듯 들리는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해외증권시장의 투자자 보호규제가 지나치리만큼 엄격해서 기업의 비밀노출 위험이 확대되는 등 부담요소가 너무 크다고도 말한다. 법률소송 건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훨씬 세부적인 내용까지 보고해야 하거나 잠정실적과 당초 예상치의 차이에 대한 추가 보고를 요구하는 등의 규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투자자 권익'이라는 명제 아래 요구되는 다양한 조건들은 상장기업의 투명성, 경쟁력 강화에 거름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기업은 해외상장을 통해 '글로벌 인지도 제고와 해외자금 조달'을 기대할 수 있고, 고객층 확대, 글로벌 투자자와의 새로운 만남 등의 소중한 기회들도 주어진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해외증시에 발뻗는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국격 향상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많은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경영성과를 나타내고 있고 어느 때보다 한국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는 요즈음이 바로 해외상장을 추진할 절호의 시기다. 우리나라에는 해외투자자들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낄 기업들이 많다. 해외기업들이 우리나라 증시를 찾아 모여드는 것처럼 더 많은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인정받기를 기대해본다.
김대유 ㈜STX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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