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자신의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알이 부화하면 원래 새가 낳은 알을 밖으로 밀어내고 마치 자기가 새끼인 것처럼 행세한다. 털도 안 나고 눈도 뜨지 않은 뻐꾸기 새끼가 아등바등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보면, '과연 생존이란 것이 뭔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2009년)에서 공과대 학장은 학생들에게 새 둥지를 보여주며 뻐꾸기의 생존을 설파한다. 생존 아니면 죽음이라는 것이다. '세 얼간이'는 인도의 공대를 무대로 세 친구의 성공과 좌절을 인도풍으로 유쾌하게 그린 영화다. 대학에서 살아남기 위한 학생들의 피나는 경쟁을 잘 그리고 있다.
인도 최고의 공대에 세 친구가 나란히 입학한다. 란초와 파르한, 라주. 규율이 엄격하고 선후배 사이 또한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파르한과 라주는 학교의 규율을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란초는 다르다. 그는 사사건건 권위에 도전하고, 자신의 꿈을 얘기하며 타 학생에 대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경쟁을 부추긴다. 시험 전날 기숙사에 포르노 잡지를 돌려 다른 학생들의 성적을 떨어뜨리거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교수 연구실에서 시험지를 훔치는 등 살아남기 위한 온갖 비열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사람은?" "닐 암스트롱입니다." "그럼, 두 번째로 착륙한 사람은?" 아무도 답을 못한다. 학장은 "알 필요도 없다"며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한다.
권위적인 학장과 교수들의 무자비한 처사에 희생자도 속출한다. 공학자가 되어 집안을 일으키려는 학생들은 좌절하고 목을 매거나, 건물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란초는 도무지 경쟁이라고는 모르는 친구다. 어떻게 저런 친구가 이 힘든 시험을 겪고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파르한과 라주는 란초를 만나면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당당하게 맞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세 얼간이'는 즐겁게 공부하는 한 친구와 시험에 끌려다니는 두 친구를 통해 배움이 뭔지를 보여주고 있다. 친구를 챙기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체성을 가지면서 공부하라고 말하고 있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연출한 '세 얼간이'는 지난해 인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다. 많은 인도 영화가 그렇듯 춤도 추고 노래도 나온다. 2시간 4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흥겨운 노래와 주인공들의 유쾌한 에피소드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런 에피소드들이 우리나라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면 좋은 직장도 못 얻고, 예쁜 아내도 못 구한다"는 파르한의 대사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학벌 위주의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
이 영화는 진로를 두고 고민하는 수능 수험생들과 학부모가 같이 보면 좋을 영화다. 힘든 시련기를 유쾌하게 풀어내 줄지도 모른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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