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더 콘서트

열정만은 진짜인 가짜 오케스트라…마법같은 감동을 일구다

옛 소련 볼쇼이 오케스트라에 천재 지휘자가 있었다. 안드레이 필리포프(알렉세이 구스코프). 그러나 그는 유태인 연주자를 쫓아내라는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의 지시를 어겨 숙청 당하고, 30년째 볼쇼이 극장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안드레이는 사무실을 청소하다 파리의 유명 극장에서 온 팩스 전문을 보게 된다. 파리에 볼쇼이 오케스트라를 유치하기 위한 초청장이었다. 그는 뿔뿔이 흩어진 옛 단원들을 모아 볼쇼이 오케스트라로 행세하며 콘서트를 하기 위해 파리로 간다.

루마니아 출신의 감독 라두 미하일레아누가 연출한 프랑스 영화 '더 콘서트'는 올해 제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호평을 받은 감동 드라마다. 숙청된 마에스트로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를 둘러싼 휴머니즘이 코믹하면서 감동적으로 그려진 영화다.

가짜 여권으로 파리의 대극장에 간 가짜 오케스트라가 성공적인 공연을 치른다는 설정이 흥미를 끈다. 30년 전 흩어진 단원들은 이미 생활고를 위해 악기를 팔아버리거나 앰뷸런스, 택시 운전기사에 야채상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모아 최상의 하모니를 만드는 것이 영화의 스토리다.

영화는 진지함보다는 유쾌한 소동극으로 시작된다. 청소부 안드레이가 오케스트라 연습을 보면서 마치 자신이 지휘자라도 된 듯 객석에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도입부부터 웃음을 자아낸다.

대절한 버스가 오지 않아 공항까지 단체로 걸어가고, 공항 로비에서 가짜 여권을 만든다고 북새통을 이루고, 돈이 급한 그들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경비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심지어 파리 도착과 동시에 악단 활동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장사와 돈벌이에 나서는 유태인 아버지와 아들도 있다. 한마디로 통제 불능이다.

영화는 현재 러시아의 현실 또한 무겁지 않게 유머 코드로 풀어낸다. 공연 매니저 이반(발레리 바리노프)은 파리에서 공산주의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러시아 석유재벌까지 스폰서로 콘서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영화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옛 명예를 되찾고 싶다는 안드레이의 자존심과 열정을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다. 통제가 되지 않던 말썽 단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제 실력을 되찾고 오묘한 화음을 이뤄가는 마법 같은 이야기는 러시아의 자존심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애정이 깊게 배어 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솔리스트이자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안느 마리 자케(멜라니 로랑)와의 마지막 13분에 걸친 협연은 "브라보!"가 절로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다. 이 연주를 통해 안느 마리 자케는 30년 전 그 사건에서 희생된 부모를 알게 된다.

처음 불협화음으로 시작했던 연주는 그녀의 매끄러운 바이올린 선율에 이내 감각을 되찾아 멋진 화음을 이루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다. 안드레이 역의 알렉세이 구스코프를 비롯해 배우들이 원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대구에서는 24일 한 극장에서만 개봉했다. 초겨울 스산한 느낌을 음악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영화다. 전체 관람가. 러닝 타임 119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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