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 기여도 적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해야

'유통법' 효과 의문…市차원 규제방안 시급

수년간 진통을 겪어왔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최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이달 16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통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유통산업의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전통시장 반경 500m 내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전통 상업보존구역을 지정하고, 그 안에는 대규모 점포 및 준대규모 점포의 등록을 제한하거나 조건을 붙일 수 있도록 했다. 또 대규모 점포를 경영하는 회사나 계열사가 직영하는 점포 등 준대규모 점포를 전통상업보존구역에 개설하려면 시장 및 군수, 구청장에게 등록하도록 했다.

하지만 유통법이 고사위기를 맞은 지역 골목상권엔 당장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대구의 경우 이미 대형마트 등이 포화상태인데다 등록제의 실효가 의문시되고, 적용 범위 또한 논란의 여지를 두고 있다는 지적인 것. 이 때문에 현재 관련 조례 제정에 분주한 대구시 차원의 강력한 정책적 제한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질적 혜택 담긴 구체안 필요

"이미 다 죽었는데 유통법이 통과되면 뭐합니까? 장사 잘되는 요지는 그들이 벌써 다 차지해버렸는데요." 대구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는 2년여를 끈 유통법을 놓고 이렇게 푸념했다. 법 제도가 약자를 구하러 나섰지만 이미 대기업들은 목 좋은 자리에 수백 개씩 점포를 늘려 놓았고 중소상인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 상황인 것.

이 때문에 골목상인들은 "이왕 상생추구를 할 거라면 대구시가 한 발짝 더 나아가 더욱 확실한 규제로 중소상인들을 살릴 수 있는 구체안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의 경우 이미 대형마트가 포화상태인데 신규진입 시 규제한 유통법이나 대구시의 4차순환선 이내 진입 제한만으로는 실질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다는 것. 기존 입점해 있는 대형마트에 대한 지역기여와 영세상인과의 상생을 유도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산시는 지난해 1년 동안 부산지역 백화점 3곳, 대형마트 7곳, SSM 3곳 등에 대해 지역기여도 전수조사를 했다. ▷인력고용 ▷지역업체 입점 ▷지역업체 납품 ▷지역상품 상설매장 설치 ▷지역상품 기획전 개최 ▷지역은행 활용 ▷지역업체 용역 발주 ▷공익사업 참여 등 8개 항목에 대해 조사해 평가했다. 부산시는 이 성적표를 토대로 유통업 상생협력과 소상공인보호조례를 제정했으며, 기여도가 낮은 대형유통업체에 대해서는 압박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김원구 대구시의원은 "대구시는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지역 기여 문제가 불거지자 3일 동안 '벼락치기' 조사로 후딱 해치우는 데 비해 부산시는 1년 동안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역 기여에 대한 논리를 개발하는 등 두 지자체의 해결방법은 큰 차이를 보였다"며 "우리도 생색내기용이 아니라 제대로 조사해서 대형유통업체들이 발뺌할 수 없는 논리와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상공인들도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정부의 지원 아래 소형슈퍼마켓 등에 공동으로 납품할 수 있는 유통체제를 만들어 가격과 품질 측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영남대 김상현 교수(경영학과)는 "영국의 경우 지역 상인들의 조직인 TCM(Town Council Management)을 구성해 상권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이 상인조직의 활성화를 통해 대형유통업체의 공세를 막고 있다"며 "우리는 상인회나 번영회가 있지만 대표성 있는 단체가 아니어서 지원이 힘들다"고 말했다.

◆영업시간 제한 등의 조치도

전문가들은 외국에서처럼 대형마트 등의 영업시간을 단축시킨다거나 의무휴업일수를 지정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일수를 제한했을 경우 전통시장을 비롯한 슈퍼마켓과 동네상점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에이시닐슨 조사자료와 한국유통학회 연구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대규모 점포 제한 국내외 사례 검토 및 과제'라는 보고서에 실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일수를 제한했을 때 약 1조2천349억원이 슈퍼마켓·전통시장·동네상점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제한했을 경우 22.8%가 다른 쇼핑장소로 대체되며, 이 경우 슈퍼마켓 15.2%, 전통시장 4.3%, 동네상점 3.2%의 이용률이 증가될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유통학회 연구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액 감소분 4조8천665억원 중 1조4천789억원이 슈퍼마켓 등으로 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마트의 오후 8시 영업규제로 인해 슈퍼마켓·동네가게는 1조1천66억원, 재래시장은 3천732억원의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이는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24시간 영업하는 대형마트가 많은 대구의 경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구시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4시간 영업하는 이마트는 총 11곳인데, 그 중 2곳이 대구에서 영업 중이다. 서울(4곳)에 이어 가장 많다. 홈플러스의 경우는 더하다. 대구시내 8곳의 홈플러스 매장 중 7곳이 24시간 내내 문을 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지역 경제와 상권 회생을 위해서는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대형마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영업시간은 물론 판매 품목과 홍보전단지 발행 제한에 대해 지역 상인들과 협의해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김철섭 경제정책과장은 "올해 7월 대구시내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 기여도 점검 결과를 토대로 '2010년 지역기여도 실적제출안'을 요구했다"며 "지역기여도가 낮은 분야에 대해서는 본사에 직접 지역기여 강화를 요청하고, 유통상생발전협의회를 통해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조만간 홈플러스, 이마트 등 지역 대형마트들을 대상으로 영업시간을 조사해 24시간 영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제한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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