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23회 每日 한글백일장 당선작] 일반부 산문 장원-김순호

'마음'

매일신문사 중부지역본부가 제564돌 한글날을 맞아 지난달 9~31일까지 주관한 '제23회 매일 한글 글짓기 공모전'에는 운문 608점, 산문 196점 등 총 804점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응모해 모두 88편이 당선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가을 빛' '하늘' '마음' '강가에서' '창(窓)' 등 운문·산문 공통 글제로 치러진 이번 공모전은 전체 대상(1명)과 각 부문별 장원(1명), 차상(2명), 차하(3명), 장려(5명)상이 선정됐습니다.

마음

김순호 김천시 성내동

내 마음은 늘 밭에 가 있다. 일곱 아이들과 살아가는 나를 위해 어느 교회의 장로님께서 무상으로 빌려 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뒤늦게 흙을 알아가게 한 것이다. 안 그랬으면 흙을 모르는 채로 지냈을 것이다.

몇 년 전, 처음으로 고구마 순을 사들고 찾아간 밭은 쑥대밭으로 가관이었다. 밭이라는 것은 한두 달만 풀을 뽑지 않으면 쑥대밭으로 변한다.

2년을 묵혀둔 밭은 어떠했을까. 다른 여성들 같았으면 그냥 물러섰다. 그러나 나는 절박했다. 오래도록 도박을 한 남편 때문에 빚은 많았고 먹을 것이며 입을 것이며 아무것도 없었다. 삽을 들고 파 나갔다. 놀랍게도 억센 풀이 뽑힌 곳에는 흙이 너무도 고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생전 처음으로 내 손으로 일구는 밭에서 흙을 만져 보았다. 흙이 따뜻하게 만져졌고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너무 좋았다. 이 놀라운 감촉을 느끼는데 내 감각은 살아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흙을 떠나온 내 삶은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나는 적어도 공인중개사 일을 했다. 말하자면 토지를 매매해 주는 일이어서 수수료를 상당히 받을 수 있었다.

그 때에는 왜 채소가 그렇게 싼지 몰랐다. 누가 농사를 짓겠느냐고 비웃었다. 오만한 나를 징계하듯이 찾아온 것은 사기도박에 걸려든 남편이었다. 그리고 끝없는 세월을 피눈물로 보내야 했다. 배고픈 아이가 가게에서 과자를 훔쳐 먹다가 들켰다. 두 살짜리 아이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발이 얼고 썩어 있었다.

쌀 한 줌을 가지러 성당의 문을 캄캄한 밤에 들어섰다. 누군가가 들어서면 어떻게 하나. 성당의 문은 밤에도 잠기지 않았지만 캄캄했다. 사랑의 쌀 항아리 뚜껑을 여는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쌀을 펐다.

뚜껑을 여는 소리가 크게 났다. 돌아서서 울타리로 빠져나오다가 봉지가 찢겼다. 쌀이 줄줄 새는 봉지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은 기막혔다. 쏟아진 쌀이 달빛에 파르스름하니 보였다. 쌀 한 줌이 없는 생활이 되다니.

아, 나는 밤에 잠을 자는 동안 죽기를 소망해야 했다. 어디론가 티끌처럼 사라질 수만 있어도 좋았다. 그런 내 소망은 가련하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밤중에 성당 문을 열고 쌀을 가지러 가야 했다. 누군가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쌀을 항아리에 부어놓았다. 일곱 아이들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항상 동동거리게 만들었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해서 먹여야 하고 학비를 대어 주어야 한다. 그랬으므로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초롱거리는 눈빛들이 나를 쫓고 있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누군가가 소문을 듣고 쌀부대를 놓고 갔다. 남편이 감동을 해서 도박을 끊었다. "이러다간 아이들을 굶겨 죽이겠어." 그리고 자기의 사업인 시추기를 가지고 깊은 우물을 파는 사업을 재기했지만 그 일은 물이 적게 나오든지 썩은 물이 나오면 폐공을 해야 한다.

시공비는 고스란히 거액의 빚으로 남았다. 삽을 들고 일을 하는 내가 아이를 길 옆에 누이고 신문지로 그늘을 만들어주고 일했다. 풀을 뽑으며 보는 흙은 얼마나 보드라운지 습기가 있어서 윤기가 났다. 아, 미치도록 좋은 흙이었다.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돌아오면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늘어졌다. 그래도 이튿날이면 또 갔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밭을 오고 간 것이다.

밭에서 일하는 동안은 내 처지를 벗어나 있었다. 웅장한 대자연이 내 친구로 다가왔다. 씨앗을 심을 때에는 또 얼마나 놀라운지. 봉지에 들은 씨앗들은 아주 작은 보석 같았다. 씨앗을 심는다고 싹이 나오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을 한 나는 참으로 열심히 밭을 오고 가면서 일했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그 가을, 일곱 살 정훈이가 고구마를 캐면서 말했다. "오늘이 최고 행복한 날이에요."

그 아이가 웃는 얼굴은 얼마나 해맑은지. 난 이 행복을 찾으러 버스를 타고 밭을 다닌다. 뒤늦게 철이 든 나는 밭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어느새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이든 아천에서 돌아오며 석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말한다. 오늘도 일하고 왔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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