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대만(臺灣)의 수도인 타이베이(臺北) 주재 한국대표부의 외교관이 새벽 귀갓길에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적이 있다.
그는 대구 청구고와 영남대를 나온 외교관이어서 지역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타이베이에서 열린 한국-대만 항공회담에 참석했던 한국 측 대표단을 숙소에 바래다준 후 집 앞에 도착한 이 씨는 칼을 들이대는 괴한과 맞부딪쳤다.
외교관은 자신의 목을 향한 칼날을 두 손으로 막아내며 기관지에 상처를 입고 쓰러졌는데 다행히 부인이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빨리 병원으로 옮겨 큰 화는 면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교 단절에 불만을 품은 대만인의 소행으로 보고 대만 정부에 조속한 범인 검거와 사고 경위 규명을 요구한 적이 있다.
최근 대만에서 이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지난주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태권도 49㎏급 1차 예선에서 대만의 양수쥔(楊淑君) 선수가 금지된 발뒤꿈치 센서 착용으로 몰수패한 데 따른 반한(反韓)운동이 며칠째 계속된 것이다.
대만의 네티즌들이 청와대 페이스북에 욕설을 남기고 홈페이지를 장시간 다운시켰으며, 타이베이에 있는 한국학교 정문에 달걀을 던지기도 했다. 타이중(臺中)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서는 삼성전자 액정 TV를 바닥에 내팽개친 뒤 망치로 깨는 사태도 벌어졌다.
심지어는 타이베이 지방의회 의원들이 선거 유세장에서 태권도복을 입고 양수쥔을 응원하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이 집회를 연 사람은 다름 아닌 국민당의 타이베이 시장 후보였다고 한다. 대만 정부가'양수쥔에 대한 실격패 판정은 한국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전 국민이 이성을 지키자'고 호소했는데도 반한운동은 숙지지 않았다.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을 두고 대만의 한국에 대한 열등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가던 대만이 2000년대에 들어 한국에 급격히 뒤처지면서 생긴 열등의식의 발로라는 것이다.
대만 국민들의 심중에는 대륙의 드넓은 본토를 빼앗기고 작은 섬나라로 내몰린 상실감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미스런 사태가 이어진다면 작지만 큰 나라였던 과거의 위상마저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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