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다. 난로 위에는 차가 끓고, 화가가 사용하던 붓과 물감까지 고스란히 책상 위에 놓여져 있다. 50년 이상 된 나무 탁자에서 화가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대구 중구 삼덕동 일대, 한 가정집. 평범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제 시대 지어진 오래된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여기는 앵포르멜 회화의 선구자 격인 고(故) 장석수(1921~1976) 화백이 1945년부터 1976년까지 거주했던 집이다. 이 집은 1942년 지어진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다. 1942년 일본인 관리가 이 집을 지어 살다가 해방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고 1945년 장 화백이 결혼과 함께 신접 살림을 꾸렸다. 그 후 이곳에서 4남 2녀를 낳고 1976년 작고할 때까지 평생을 여기서 살았다. 지금은 화가의 부인 권만연(85) 여사와 둘째 아들 장상기(61) 씨가 인근에 살면서 매일같이 쓸고 닦으며 집을 관리하고 있다.
이 집에서 태어나 16년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던 장 씨는 집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사용했던 모든 물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심지어 방 안 달력마저 1960년에 멈춰 있다. 책꽂이의 책도 고인이 사용했던 그대로다. 1950, 60년대 출판된 다양한 책들이 즐비하다. 장 씨는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소풍 가방에 토끼와 거북이를 그려주셨는데 소풍 가면 그 가방이 최고 인기였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밖에도 화가가 즐겨 사용하던 파이프, 미놀타 카메라, 낡은 노트, 붓 등이 진열장에서 시간을 잊은 채 잠자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영동 씨는 "1950~70년대의 미술계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런 공간이 남아 있는 곳은 별로 없다"면서 "이런 공간은 사라지면 회복이 불가능한 대구의 중요한 문화 유산"이라고 말했다.
330㎡(100여 평)의 이 집은 건축물 자체로도 가치가 높다. 낡아서 허물어진 부엌을 제외하면 집 구조 역시 건축 당시 그대로다. 창문살 하나 바뀌지 않고 일본 전통 가옥과 양식이 혼합된 1940년대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집 안에 위치한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로, 건축 당시 사용하던 형광등 버튼 하나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장 화백의 며느리 강은숙(53) 씨는 "처음 집주인이었던 일본인 아들이 두 번이나 찾아와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집을 그대로 보존해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고 전했다.
역사를 간직한 집과 작품들이 있지만 정작 관할 관청에서는 무관심하다. 최근 재개발 바람에도 이 집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토착 주민들이 재개발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들 장 씨는 "당분간은 이 집을 그대로 둘 생각이지만 개인이 지켜내기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구가 가진 문화적 재산은 의외로 풍부하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수놓은 큰 별들이 대구에서 자라고 활동했다. 천재적인 서예가 석재 서병오를 비롯해 이인성, 이쾌대, 정점식, 장석수, 최근배, 주경 등 근·현대 미술기에 활약했던 많은 작가들이 대구 출신이다.
하지만 우리가 대구 미술 역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수많은 미술계의 거장들이 역사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 이중희 계명대 미술학과 교수는 "최소한 이인성, 서병오의 기념관이라도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그들이 살았던 거주지를 당시 분위기 그대로 되살려 작게나마 작품을 전시하고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 서병오의 생가터는 중구 동성로 3가. 수년째 서예계에서 석재 선생의 기념관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진척이 없다. 이인성의 주요 작품은 대부분 삼성이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쾌대, 장석수 등은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대부분 유족이 소장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작품을 모을 수 있다.
대구 미술계에서는 반드시 근대미술의 역사가 정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맥향화랑 김태수 대표는 "대구에 이인성, 이쾌대의 미술관이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중희 교수는 "길을 새로 내거나 돈을 많이 들여 거창한 건물을 짓는 방식이 아니라 옛날 그대로 정감있고 친근하게 미술관을 곳곳에 짓는다면 대구의 중요한 문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엔 세계적으로 관광의 흐름이 무대화된 전통 문화를 배격하고 '지역 밀착형', '에코 투어리즘', '작은 문화 콘텐츠'등으로 바뀌고 있다. 장희정 신라대 국제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지역민과 지역문화, 지역정서, 지역의 자연이 최대한 배려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역이 원래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과 인재들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는 것. 장 교수는 그 예로 달동네에 공공디자인을 도입해 관광명소가 된 일본 히로시마의 오노미치, 예술인과 지역민이 함께 운영하는 가가와현의 나오시마 '빈집 프로젝트'를 들고 있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근대적 자산이 골목마다 살아나고 그 위에 새로운 문화가 겹쳐질 때 대구는 진정한 문화도시가 될 것이라는 것이 문화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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