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미술의 거장들이 한국화단과 서양화단 모두에 고루 분포해 있다.
한국근대미술사를 전공한 이중희 계명대 미술학과 교수는 "대구 미술계는 석재 서병오, 이인성이라는 기라성같은 양대 거목이 있었기에 그 주변의 풍토가 자연히 풍요로워졌다"고 대구 미술 역사의 특징을 지적했다.
실제로 석재 서병오(1862~1935)는 조선 말기, 영남 화맥을 일으켰다. 1923년 석재가 영남을 중심으로 평양, 호남 사람까지 참가하는 교남시서화연구회를 만들면서 명실공히 영남 화맥이 형성됐던 것. 석재는 조선 말기 서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 심사를 5차례나 맡았고 중국, 일본을 오가면서 국제적 교류를 나눴다. 그는 죽농 서동균, 김진만, 박효원 등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해냈다.
그런가 하면 서양화단에는 이인성(1912~1950)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 총독부는 3·1운동 이후 문화 통치를 시작하면서 조선미술전람회를 만들었다. 이는 당시 상상을 초월할 만한 권위를 가지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미술인들이 출품할 정도였다. 최대 권위를 자랑하던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등장한 스타가 바로 이인성. 18세에 입선하며 '대구에서 천재 예술가가 나왔다'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명실공히 미술계의 스타로 자리잡았다. 그는 해방 이후 서울대 미술대학 설립 운동을 벌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사고로 요절했다.
이인성은 1930년 애국적인 성격의 미술단체 향토회를 만들었고 그 흐름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당시 이인성을 둘러싼 이들로 박명조, 김용조, 서동진, 금경연, 서진달, 최화수 등이 있다. 이들은 대구 미술계를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그 후 대구 서양화 2세대로 정점식, 주경, 서석규, 손일봉, 장석수 등이 있다.
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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