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중학생이 게임 중독을 나무라던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 또 다른 중학생은 아버지의 꾸중에 앙심을 품고 집에 불을 질러 가족 4명을 숨지게 했다.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는 이 같은 사건을 저지르는 청소년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아동 전문가들은 최근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두고 "궁극적으로 부모 양육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빚어진 일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억눌린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달 19일은 세계아동학대 예방의 날, 18일부터 24일까지 UN아동권리주간이었다. 올해는 아동복지법 개정 10년이 되는 해지만 아직 아동 권리에 대한 인식은 낮다. 대구 유일의 아동보호기관인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은 22일 아동권리증진 및 효과적인 아동보호 서비스 제공을 위한 워크숍을 가졌다. 지역에서 첫 시도로, 아동 보육 관련 종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동의 권리에 대해 토론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한 '2009 전국아동학대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학대 상담신고 접수 건수가 꾸준히 증가해 2009년 신고건수는 9천309건으로 2001년보다 2.3배 증가했다. 아동 학대 사례 80% 이상이 부모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아동이 사망에 이른 사건 8건 모두 친부, 친모에 의한 것이다.
아동 학대 유형별로 살펴보면 방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9년 아동 학대 사례 9천309건 가운데 35.6%가 방임에 의한 것이었다. 방임은 빈곤 문제와 어우러져 다른 학대 유형에 비해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발달 단계의 아동에게 끼치는 영향은 방임이 오히려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금하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특히 사춘기 중학생 아이가 문제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대응하는 방법을 잘 몰라 방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하나같이 "아이가 초등학생까지는 착했는데 중학교 가서 나쁜 친구를 만나 잘못된 길로 빠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동전문가들은 이 경우 부모의 일관성 없는 양육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정인숙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초등학생까지는 부모가 자식을 조정할 수 있지만 중학생이 되면 이것이 불가능해진다"면서 "아이들도 이때쯤 부모와 신체적·정신적으로 힘 겨루기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2일 열린 워크숍에서 김옥순 수원대 교양교직과 교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새로운 아동관의 정립'이라는 발표를 통해 "영유아기의 아동은 분명 성인들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만 이것이 성인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며 아동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흔히 부모들은 아이를 두고 '백지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잘못된 아동관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이미 완성된 인격체로, 어른들의 존중이 필요한 존재다. 부모의 의도에 따라 바뀌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정 관장은 "아이의 의사와 무관하게 엄마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게 하는 것도 아동 권리 침해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최근 아동 학대 신고 유형에서 심각한 것은 성학대에 대한 신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 전체 신고의 약 5%에 해당하는 성학대가 충격적인 점은 가해자가 대부분 친부라는 사실이다. 김정숙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는 "주로 어릴 적부터 가벼운 접촉부터 시작해 아이가 자랄수록 심각한 성학대를 가하는 친부의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성학대 행위자 중 부모에 의한 경우가 45.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상담교사와의 상담에서 이런 사례의 발견이 늘고 있는데 인지능력이 낮은 아동들에게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 가해되는 성학대는 신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주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아이들이 받는 상처가 크다.
최근 빈번해지고 있는 가족 동반자살도 아동 권리 측면에서 큰 사회적 문제다. 아이들의 생존권을 부모가 박탈하는 것은 아이를 자신의 부속물 또는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동 학대 신고는 1577-1391, 129, 112, 119 등으로 할 수 있다. 신고를 하면 현장 조사를 통해 아이를 긴급 격리하기도 하고 법적 고소고발도 도와준다. 정 관장은 "아동 학대 사례를 발견하면 누구나 신고가 가능하다"면서 적극적인 신고와 예방을 당부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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