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대구는 유생(儒生)들의 중심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대구고보(경북고 전신)가 서울의 경성고보, 평양의 평양고보와 함께 명성을 날렸다. 해방 후에는 국립 경북대를 비롯해서 개신교 계통의 계명대가 설립되었다. 이와 함께 영남지역의 중심사학을 목표로 1968년 통합'설립된 영남대, 사회복지 분야 전국 최고였던 대구대, 그리고 이화여대와 함께 우리나라 여성 명문대학인 효성여대(현 대가대)가 교육도시 대구의 명성을 드높였다. 지금 대구 인근 지역에는 24개의 대학(4년제 11개, 전문대 13개)에 교수 5천200명과 22만6천 명의 대학생이 있고, 특히 경산은 12개의 대학이 집중된 '대학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구지역 대학들의 위상이 심상치 않다. 리더 격인 경북대의 경쟁력은 계속 낮아지고 있고(2010 중앙일보 대학평가 18위), 사립대학들은 학내 문제 등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대구의 대학들이 불과 20여 년 만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교육도시 대구'의 명성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1990년대 이후 우수학생과 연구비가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집중되다 보니, 지방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대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편 1990년대 민주화의 바람이 대학캠퍼스에 불어닥치면서 많은 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도입하였고, 또 학원분규에 휘말렸다. 적잖은 사립대학의 재단이 비리로 쫓겨났고, 정부가 임명한 관선이사회가 구성되었다.
지난 20여 년을 되돌아보면 대구의 대학들은 같은 지방인 부산이나 광주보다 민주화의 진통을 더 겪었고, 결과적으로 경쟁력도 더 떨어졌다. 광주는 지역 전체가 '반독재 투쟁'으로 일치단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의 바람이 대학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정권의 강력한 지원 하에 대학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부산은 YS'노무현 정권의 지원도 많았지만, 항구도시의 특성상 이념보다는 실용을 선택하여 대학 발전에 매진하였다. 이렇게 경쟁자인 부산'광주의 대학들이 열심히 뛰고 있는 동안, '보수도시 대구'의 대학들은 학내 분규와 이념 논쟁으로 소중한 세월을 보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선으로 선출된 대구 지역의 총장들은 교수뿐만 아니라 직원'학생'동문들의 눈치까지 살펴야 했다. 과감한 대학 개혁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대구의 대학들은 우수학생은 수도권에 다 빼앗기고, 그동안 대구를 찾았던 울산'경남의 학생마저도 부산 쪽으로 잃고, 대구경북지역의 고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입학생 확보에 출혈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대구 지역의 대학들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겠다. 지역대학끼리 불필요한 경쟁을 하기보다 힘을 합쳐 수도권이나 부산의 대학들과 경쟁할 채비를 해야 한다. 결국 대학들이 특성화를 통해 '대학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직선제 총장들은 교수들의 반발 때문에 '대학 특성화'를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립대의 경우 법인화, 사립대의 경우 재단 정상화와 함께, 직선제가 아니라 별도의 방법으로 대학 내부부터 개혁할 수 있는 혁신적인 사람을 총장으로 선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총장 하고 싶은 교수님들'이 너무 많으니, 아마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총장 직선제 폐지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대구와 유사한 성격의 도시인 일본 교토의 대학들이 1980년대 중반 타 지역 이전 움직임을 보였을 때, 교토시는 '대학의 고장, 교토21플랜'을 수립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교토21플랜'에서는 '대학이라는 자원을 교토 발전에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고민하였다. 그 결과 교토시와 교토 상공회의소가 적극 지원하는 '대학 컨소시엄 교토'가 지역대학의 70%가 참여하는 가운데 탄생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대학과 지자체 간 협력과 대학별 특성화가 진행되었다. 이 덕분에 오늘날 교토 지역의 대학들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학문의 도시, 교토'의 명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고, 교토시도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지금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대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대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하고도 힘든 과업을 대학 총장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 우리도 교토처럼 지역의 대표급 대학들이 앞장서고, 대구시가 적극 지원하는 '대학협력체' 구성을 추진할 수 없을까?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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