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박정희와 간첩

북한이 연평도를 폭격할 때 농협, 면사무소, 파출소 등 주요 시설에서 가까운 건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미리 주요 건물의 위치를 알려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타격이 가능했다"며 '간첩' 소행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간첩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정보를 상대방에 팔아넘기고 그것으로 우리를 해코지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정보를 알려줘도 상대방이 우리의 이웃이라면 간첩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 공유'에 속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간첩이 없어졌다.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보지 않고 같은 민족 즉 '이웃사촌'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북한이 친근한 이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인터넷에 '간첩이 뭐예요'라는 초등학생들의 질문이 쇄도할 정도로 우리는 과연 '평화 시대'를 누리고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간첩'은 군사정권을 연상시킨다. 공교롭게도 내일 경북 구미에서는 한국형 발전 모델의 창출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재조명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세미나를 주최한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은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 지구촌 많은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의 위상과 성공의 토대를 돌아보는 인식이 미흡했다"며 박정희 리더십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박정희 리더십의 근간은 크게 두 가지다. 경제적으로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요, 정신적으로는 철저한 '반공(反共) 무장'이다. 반공 정치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6'25의 폐허 위에서 국민의 단합된 힘의 결정체가 '반공 정신'에서 나왔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 체제에서 가장 두려운 혐의는 '간첩죄'였다. 살인죄는 참작의 여지나 있었지만 간첩죄는 더 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이를 악용한 경우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북한을 밟고 넘어서는 데 반공으로 똘똘 뭉친 무장 정신이 그 중심에 있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뒤늦은 간첩 타령이 탐탁지 않지만 우리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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