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히말라야 트레킹 (1)사랑고트

눈앞에 펼쳐진 14좌 연봉 아! 여기가 신들의 정원'''

사랑고트 정상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만년설을 뒤집어 쓴 고고한 자태가 경이롭다.
사랑고트 정상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만년설을 뒤집어 쓴 고고한 자태가 경이롭다.
사랑고트로 가는 길에 만난 네팔 여인들.
사랑고트로 가는 길에 만난 네팔 여인들.

전 세계 트레커들의 꿈의 성지인 히말라야.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이곳을 오른다는 것은 전문 산악인들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중에서도 히말라야의 중심이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m급 14개 봉우리중 8개나 몰려 있는 네팔은 일반인들의 발길을 거부하는 오지 중 오지였다. 그러나 최근 히말라야 트레킹 상품이 늘고 있고 트레킹 정보도 늘고 있다. 10여년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인 네팔 전문 여행사도 10여 개로 늘어났다. 최근 대구에서도 네팔 전문 여행사가 생겨날 정도로 히말라야는 더 이상 가기 어려운 오지가 아니다. 19일부터 9일간의 일정으로 히말라야의 중심이자 해발 8,000m가 넘는 산들이 동서를 가로지르는 세계의 지붕에 올랐다.

◆착하게 살걸…

인천공항을 이륙해 해를 쫓아 날기를 6시간. 갑자기 기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살포시 잠에서 깨어보니 히말라야의 눈부신 산들이 호수같은 구름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구름을 뚫고 올라온 신들의 세계를 고산 준봉들이 바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느낀 경이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도 카드만두의 첫 인상은 짜증스러웠다. 입국수속을 하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고 공항을 나서자 곳곳에 AK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울퉁불퉁 비좁은 도로를 곡예하듯이 달리는 차. 신호등도 없다. 소가 도로를 가로 막아도 천하태평이다. 다행히 해발 1,500m의 고지대임에도 생각보다 춥지 않다. 낮에는 외투가 필요 없을 정도다.

수도인 카드만두에서 하루를 보내고 곧장 포카라로 향했다. 포카라는 히말라야 트레킹의 전초기지.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무려 50여 개의 코스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안나푸르나 코스는 길이 험하지 않아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보통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는 크게 3가지. 푼힐 전망대(3,193m)에 올라 정면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산군을 조망하는 코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까지 오르는 코스, 포카라 동쪽 베시사하르에서 출발해 소롱라(5,416m)와 푼힐을 거쳐 포카라로 돌아오는 일주 코스다.

그러나 전문등산객이 아닌 기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히말라야 설경에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무래도 등반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사랑고트 전망대를 트레킹하기로 했다. 꿩대신 닭인 셈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는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덤으로 페와 호수까지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히말라야에선 야산 수준이지만 그래도 해발 2,000m에 가까운 설산이다. 일반인이 히말라야의 품에 들기엔 충분하다. '대구 앞산 정도만 트레킹을 하면 이곳에 오를 수 있다'는 전영남 라이온여행사 대표의 설명도 매력적이었다.

포카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히말라야의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랑고트'(Sarangkot)로 향했다. 40분쯤 택시로 이동한 곳에서 내려 어둠 속의 산행을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니 금세 숨이 거칠어지고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힘이 들어도 해가 뜨기 전에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다. 어둠 속을 뚫고 한참을 올랐을까 저 멀리 어렴풋이 전망대가 보였다. '다왔다'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섣부른 생각이었다. 요리조리 돌면서 올라야 하는 비탈진 계단의 경사로가 마지막 땀을 흠뻑 흘리게 했다.

드디어 전망대. 새벽부터 일찌감치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잠시 지친 몸을 쉬고 있는 사이 동쪽 하늘에서 햇님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이곳저곳에서 함성과 함께 찰칵찰칵하는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도 잠시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까지 내렸다. 정전이 생활화되어 있는 나라답게 하늘까지도 시도 때도 없이 정전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 맑게 갠 산을 볼 수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좀 착하게 살걸….'

◆한 입에 '꽉'깨물어 버릴까

풀이 죽어 하루를 보내고 다음 행선지인 룸비니로 떠나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하얗게 빛나는 설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부랴부랴 사랑코트로 향했다.

낮의 사랑고트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집도 있고 밭도 있었다. 카펫을 만드는 초라한 가게도 있고 소형 목각품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었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포카라의 페와 호수가 펼쳐졌다. 그리고 올라선 정상.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서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그 높이를 자랑했다. 모두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다. 이름도 아름다운 안나푸르나(8,091m)를 중심으로 K2(8,611m)봉도 있고, K1(8,598m)봉도 있다. 로체(8,516m), 마칼루(8,463m), 마나슬루(8,163m) 등 아름다운 만년설의 봉우리를 하나하나 확인할 때마다 속으로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는 보이지 않았으나 세계에서 높이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한 산들이 모여 있으니 과연 세계의 지붕이라 불릴 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직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불리는 마차푸차레. 물고기 꼬리를 닮아 피쉬 테일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은 말이 필요없었다. 아이스크림을 닮은 모습이 한입 '꽉' 깨물고 싶었다. 아름다운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산악인들의 마음이 저절로 이해가 됐다.

네팔 사랑고트에서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취재협조:라이온여행사(053-254-5445)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