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일삼아 달성공원에 나들이하는 어르신 치고 '달성공원 독도갈매기' 서대해(52) 씨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매주 토요일 오전 공원 내 '달성 서 씨 유허비' 옆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을 보게 된다. 10년째 단 한 주도 빠짐없이 독거 혹은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무료이발 봉사를 해오고 있는 서 씨에게 모두들 머리카락을 깎기 위해서다.
"대개 어르신들은 3주에 한 번꼴로 제게 머리를 깎습니다. 덥수룩하고 자주 감지 않은 머리카락을 이발해 드리면 아이마냥 좋아들 하시죠. 이발 전·후를 비교해보면서 확연히 달라진 본인들의 모습에 매우 흡족해 하십니다."
서 씨가 이렇듯 10년을 한자리에서 한결같이 어르신들의 머리를 깎아드리는 이유는 뼈에 사무치는 '사친곡'(思親曲) 때문이다. 9남매 중 막내였던 서 씨는 부모를 여의자 그동안 못 다해 드린 효도의 아쉬움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대구 토박이로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노부모님을 마음처럼 살갑게 보살펴 드린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그때부터 어르신들을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이발봉사를 하게 됐다. 이를 위해 서 씨는 직장생활 틈틈이 이용기술을 익혀 1993년 정식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노천이발이라고 허투루 하진 않습니다. 어르신들의 개성에 맞게 머리카락을 다듬고 면도까지 해드리고 나면 제 스스로도 너무 기분이 상쾌하고 본인들도 산뜻한 모습에 적잖이 놀랍니다."
꼼꼼한 성격에 여느 이용소 못지않게 정성을 다해 어르신들의 머리를 깎아드리는 서 씨의 달성공원 노천이용소가 열리는 날이면 이용객만 평균 90여 명에 이른다. 줄잡아 9시간 이상 걸리는 대장정 봉사다.
"할머니들 중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이발을 부탁하기도 하고 할아버지들 중에 시각장애나 운신을 못하는 친구들의 이발을 부탁해오기도 합니다. 그럴 땐 직접 가정방문을 통해 이발을 해드리기도 합니다."
서 씨는 이런 어르신 6명의 이름과 주소를 작성해 놓고 정기적으로 방문해 이발을 해 드린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결혼혼수품 가게를 운영하는 서 씨는 멀게는 사월동까지 출장봉사를 나가는 셈이다.
"늘 집사람에게 미안하죠. 주위에선 그렇게 매주 나가면 부인에게 혼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아내가 많은 이해를 해줘 제가 편하게 봉사활동을 합니다. 이런 저를 보고 큰딸아이도 봉사를 천직으로 여겨 전공을 사회복지과로 선택했습니다."
서 씨의 노천이용소는 비단 머리카락만 깎는 곳은 아니다. 줄을 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웃겨 드리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다. 우스갯소리는 물론 짬짬이 익힌 마술로 그의 가난한 고객들을 즐겁게 한다.
"할머니 중엔 좀 더 예쁘게 해달라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기도 하며 할아버지 중엔 '개업해라. 그러면 돈 많이 벌게 아니냐'며 말부조를 거드는 분들도 있죠."
그러나 서 씨는 스스로를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라고 했다. 이발봉사를 받는 1천500여 어르신들의 말끔해진 모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앞에 펼쳐진 세상은 더없이 밝고 정이 넘치는 마음부자들의 세상이니까 말이다.
한편 서 씨는 명함에 스스로 지은 별명인 '독도갈매기'를 새겨 다닌다. 외로운 섬 독도를 묵묵히 지켜나가는 괭이갈매기의 기상을 닮고 싶어서이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이즈음 '달성공원 독도갈매기 서대해 씨'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든든하고 밝은 것 같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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