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고향을 '고려장'으로 만들 것인가?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서는데 문 앞에 배추 여러 단이 놓여 있었다. 농약을 치지 않고 기른 무공해 배추이니 쌈을 싸서 드시라는 메모까지 남겼다. 며칠 전에는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문 앞에 휴지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이웃에서 두고 간 선물이었다. 시월 말에 전세를 얻어 이사한 시골집에서 겪는 일상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장님께 연락하여 배추를 두고 가신 분은 은퇴하여 귀농하신 남아무개 선생님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아냈지만 휴지 꾸러미를 두고 가신 분은 끝내 알지 못했다.

첫날 이사 떡을 들고 이웃을 찾아갔을 때, 집에 계시는 분이 드물었다. 분주하게 농사일을 하느라 집을 비워 두었지만 어느 집도 문을 걸어 둔 집은 없었다. 아예 대문 있는 집이 없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다. 전원 주택이 아니라 한옥 농가로 이사 갔다고 해도 페이스북 친구들은 놀러오겠다고 야단들이었다. 모두 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인심이 푸지다고 해서 시골 마을이 살기 좋다고만 할 수 없다. 노인들만 살기 때문에 전망이 없다. 노인들의 죽음과 더불어 시골 마을은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될 상황이다. 민속 조사를 가면, 주민들이 '우리 마을은 이제 거대한 경로당'이라는 말을 흔히 했다. 그런 말을 들은 것이 10여 년 전이었는데, 최근에는 '마을이 경로당이 아니라 고려장'이라고 자조했다. 농촌 노인들은 자식들로부터 버려졌을 뿐 아니라, 도시 사람에게서 소외되었으며 정부 정책에서도 제외되어서, 마을의 죽음이 머지않다고 진단한 까닭이다.

실제로 시골에서 살아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마을은 '고려장'이 아니라 '수탈 공간'이라고 해야 정확한 문제 인식에 이른다. 버려진 노인들이 자녀들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에서 번듯하게 사는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수탈당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양식과 양념, 군것질감까지 모두 도시의 자녀들에게 보내기 위해 갖은 농사를 다 짓는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해서 거둔 쌀과 콩, 고추, 깨, 호박, 고구마 등을 두루 챙겨서 포대기와 비닐 봉지에 갖추갖추 담아 두었다가, 자녀들이 주말이나 명절에 승용차를 몰고 오면 바리바리 실어보낸다.

그러느라 노인들은 굵고 멀쩡하게 잘생긴 것들은 모두 자식들에게 주고, 자신은 늘 흠이 나고 못생긴 자투리만 먹는다. 자녀들의 대접을 받아야 할 연세에 농사일에 골몰하면서 혼자 손으로 초라한 밥상을 차려 먹는 노인들을 보면 사실상 자녀들의 머슴이자 노예 노릇 처지나 다르지 않다.

자진해서 자녀들에게 먹을거리를 바치는 일은 그래도 덜 억울하다. 자녀들에게 집과 토지를 저당 잡히거나 팔아준 까닭에 오갈 데 없는 노인들까지 늘어난다. 내가 전세 든 집 아들은 집을 담보로 대부업자에게 집값에 해당하는 돈을 빌려 쓴 채 갚지 않고 다시 전세를 놓았을 뿐 아니라, 노모를 병원에 유기한 채 자기 이삿짐만 빼서 종적을 감추었다. 전세금을 받으면 가등기를 말소해 주겠다는 계약을 어기고 노모까지 버린 채 모든 연락을 끊어 버렸다. 시골 인심이 도시 깍쟁이들에게 끊임없이 수탈되고 있는 현장이 시골 마을이다. 따라서 지금 농촌은 이중의 모순에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에서 개를 내던진 사건이 발생하자, 어떤 선량께서 동물학대방지법안 개정을 서두르고 동물보호단체는 동물 복지를 보장하는 법안 개정을 주장했다. 이를테면 동물에게 사료를 주지 않은 주인에게는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 부모를 버린 자식들을 처벌하는 법안은 아예 없다. 애완견은 버리거나 사료를 주지 않으면 안 되지만 제 부모는 버려 두어도 좋고 음식을 차려 주지 않아도 좋은가. 그럼 왜 시골 마을을 21세기의 고려장으로 만들어도 분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도시에서 떵떵거리며 살면서도 쪼그라든 시골을 계속 수탈하고 아파트에서 더 안락하게 살기 위해 제 부모를 공공연히 버려둔 낯짝 두꺼운 사람들은 듣고서 답하라. 당신 부모를 기어코 고려장으로 만들고 말 것인가? 그래야만 당신이 꼭 더 행복한가?

임재해(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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