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은 '산의 나라'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m가 넘는 히말라야 14좌 중 8개를 품고 있다. 그래서 이맘 때만 되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네팔은 '신의 나라'이기도 하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시크교를 비롯해 불교 성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에는 다양한 불교 상징물을 간직하고 있어 전세계인들의 불심(佛心)을 키우고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아마 룸비니 여행을 해본 사람은 농으로 '불편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불편함을 참는다면 행복할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안개 같은 뿌연 먼지를 뚫고 룸비니로 향하는 길은 부처의 '고행'을 연상케 했다.
네팔 도착 일주일째 되는 날 포카라에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룸비니로 향했다. 포카라에서 룸비니로 가기 위해서는 중부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꼬불꼬불 산길이 몇 시간째 이어졌다. 도로는 수십m의 낭떠러지를 끼고 있는데다 곳곳에 고장난 차량들이 통행을 막고 있어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비포장 도로위에서 한나절을 꼬박 먼지에 시달린 후에야 이미 어둑해진 룸비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야지대인 룸비니도 상황은 마찬가지. 지독한 먼지와 매연,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길위에 뒤엉킨 차량과 신경질적인 경적소리가 여전하다.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서둘러 부처의 탄생지인 성원지구(Sacred Garden Zone)로 향했다. 이곳은 붓다가야, 녹야원, 구시나가라와 더불어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 입구 매표소 앞엔 흰색 시멘트 구조물인 대형 아치를 세웠고 아치 정상 부분엔 뾰족한 불탑이 솟았다. 불탑 아래쪽에 그려진 '부처의 눈'이 이방인을 맞는다. 매표소를 지나 세발자전거인 닉사를 타고 10여 분을 달리자 성원에 도착했다. 아소카 왕이 세웠다는 석주가 빛바랜 세월 속에 우뚝하다. 어쩐지 경건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인도의 아소카 왕이 기원전 249년 부처의 탄생지를 순례하고 주민의 조세를 면제했다'는 내용을 담은 비문은 룸비니를 전설에서 역사로 끌어 올렸다. 이 비문을 통해서야 2천500년이 흐른 지금, 이곳이 부처의 탄생지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 뒤로 마야데비사원이 세워져 있고 사원 내부에는 부처의 탄생지를 유리관으로 보존하고 있다. 마야부인이 산기를 느껴 붙잡았다는 보리수와 출산을 앞두고 목욕을 했다는 구룡못이 긴 세월을 함께 하고 있었다. 석가모니의 탄생 장면을 묘사한 부조를 모신 마야데비사원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사각형 건물로 1943년 재건됐다. 11세기에 건립된 옛 사원 유적이 여기저기 흩어진 건물 안은 상당히 넓은 공간이다. 건물 안 난간을 돌면서 탑과 벽돌로 지어졌던 옛 사원의 남은 흔적들을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일행들이 부처님이 탄생한 곳임을 알려주는 마크스톤이 보관된 곳으로 몰려간다. 그 곳은 벽돌 잔해 위에 나무 칸막이를 만들어 유리로 막아두었다. 유리 칸막이 안엔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걸으면서 찍힌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돌이 안치되어 있다. 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던 곳이다.
부처님의 탄생지를 관람한 후 대성석가사라는 한국절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나 먼 이곳에 한국절이 있다는 자체가 반가웠다. 정식 명칭은 '불타탄생성지 네팔 룸비니 국제사원구역 내 한국 사찰인 대성석가사'로 꽤 길다. 시멘트 덩어리 한국절 대성석가사는 15년째 공사 중이다. 점심 공양이 끝날 때쯤 배고픈 방문자들을 위해 음식을 나누어 준다. 룸비니를 여행 혹은 순례하는 사람들이 지위나 인종에 관계없이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푸짐한 한국인의 인심이 이곳인들 다를까 싶다. 인근에는 한국뿐 아니라 티베트, 독일, 라오스, 베트남 등 각국이 사찰을 지어 신심 경쟁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일본과 중국까지 가세했다. 그런데 모양과 형식이 제각각이다. 부처는 하나인데 섬기는 부처의 모습은 제각각이라 언뜻 당황스럽다. 룸비니를 끝으로 네팔 일정을 마쳤다.
'나마스테'. '내 안의 신이 당신 신을 경배합니다'라는 종교적인 의미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네팔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있다 보니 벌써 네팔과 작별할 때다. 아쉽다. '끝은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돌아오는 발길을 가볍게 한다.'나마스테 네팔….'
네팔 룸비니에서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취재 협조:라이온여행사(053-254-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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