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김치가 있는 풍경

성격 급한 나는 바이어에게 보낼 샘플 의류들을 들고 아침 일찍 우체국에 들어섰다. 얇은 옷들이라 한치의 오차없이 정성스런 포장을 위해 조용할 것 같은 오전 시간에 처리하고자 일찌감치 서둘렀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우체국 포장 코너에 줄을 길게 섰길래 무슨 일인가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김장용 비닐에 담긴 맛깔스런 김치들이 곳곳에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장김치를 어디론가 보내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정말 지금 계절이 아니면, 이곳 대한민국이 아니면 잘 볼 수 없는 풍경인 듯 했다. 바야흐로 김장철인 것이다. 김장 김치의 양이 많은 어느 노부부에게 직접 김치를 담그셨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셨다. 두 분이서 하루종일 걸려 담그셨다 하신다.

"고생 많으셨겠어요. 너무 맛있게 보이네요"

"그래도 요즘은 절여놓은 배추도 있고 깨끗하게 씻어주기까지 하니 수월하게 했어요. 그래도 나중엔 팔이 안 올라 가더라고요." 하시면서 웃어 보이셨다. 각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 똑같은 무게로 나누어진 잘 버무려진 빛깔 좋은 먹음직스런 김치였다. 이 김치의 탄생이 어떤 속재료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알리시려는 듯 어디 마늘을 썼으며 양념을 어떻게 했는지까지 자세하게 설명하시며 행복해 하시는 듯 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김장은 우리집 겨울 최대의 집안행사였던 것 같다. 배추가 집으로 배달되는 날이면 우리 4형제는 모두 나가 배추를 옮겼던 기억이 난다. 배추를 조심히 다루지 않는다고 야단을 맞으면서도 서로 더 많이 옮기려 욕심을 부렸다. 우리의 임무는 배추를 나르는 놀이로 끝나지만 어머니는 그 많은 양의 배추를 밤새 절이고 씻고 하셨다. 그 시절의 김장은 하루일이 아니라 몇 날이 걸리는 큰 행사였다. 양념을 버무리시다가 배추 속잎을 떼내 차례로 우리들 입안으로 넣어 주시던 그 김장 김치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시절엔 김치의 종류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오징어 김치, 갈치 김치에 동치미까지···. 가족들을 위해 그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으셨던 우리 어머니들.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편물 수령지 주소란에 따로 적어오신 메모와 한글자 한글자 확인해 가시면서 정확하게 써내려 가시는 어르신의 손에 자식들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바쁘게 사는 자식들을 위한 어르신의 애정은 그대로 나의 가슴에도 전달돼 왔다.

김건이<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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