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시골풍 / 고희림

시골다방 이름이란 게 참 버젓합니다

어린 단풍 김양은 새로 도배한 시골집처럼 구멍째 반복되는 꽃밭입니다

'국경 없는 사랑', '북한처녀와 결혼 합시다'라는 신종지자체는 아시아의 여자들께 새마을운동을 팝니다

저기, 가래 끓는 소릴 내면서 경운기 한 대, 여기 작은 트럭과 무릎이 휘어진 노인네 한 분이 '영양 보신탕 전문' 가든 앞을 미래에 남겨질 화석처럼 밑 빠지게 지나갑니다

모텔을 숨겨놓은 시골풍 숲에선 버젓이 밑을 사고 밑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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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쓸쓸함은, 예컨대 상투적인 시골다방 이름처럼, 우리들 삶의 후미진 외곽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스며있다. '시골풍'으로 낡아가는 삶들이 낡아가는 채로 그나마 "참 버젓하"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낡고 소외된 존재들도 오롯이 생명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동참하고 있다는 근원적인 진실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어린 단풍 김양'은 말 그대로 "새로 도배한 시골집"처럼 촌스럽고 소박하게 어여쁘지만, "구멍째 반복되는 꽃밭"이어서 한없이 쓸쓸한 그 무엇인 셈이다.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경운기 한 대'나, '무릎이 휘어진 노인네 한 분' 역시 예외없이 "미래에 남겨질 화석처럼" 적막한 존재들이어서, 일테면 '어린 단풍 김양'과 한통속인 '것들'이다.

현존의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납작 웅크리며 '견디는' 존재들의 세계인 이 '시골풍' 면소재지에도 이따금 성채처럼 '모텔'이 숨겨져 있다. 이로써 바닥마저 이윽고 '밑'이라는 자본이 되어 도시의 현란한 자본주의 문명에 '버젓이', 그러나 더없이 적막하게,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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