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귀향 유감

바다로 떠난 배가 제 항구로 돌아오듯 귀가 빠지고 잔뼈가 자란 내 고향에 돌아왔다.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게 세월이라 하더니만 그 시간이 부러진 일세기쯤 되었다. 새 집을 짓고 날마다 사니 낯선 것도 보고 싫은 것도 본다.

나무보다 흙이나 바위가 더 많이 보이는 게 고향의 산이었다. 그렇게 헐벗고 초라했던 고향 산을 다시 가까이 가 본다. 잡풀들이 자라는 그 속에 키 큰 나무가 가득히 서 있다. 산 계곡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넓었던 시내는 좁아졌고 강둑은 높아졌다. 고향 청도의 길이 좋아지니 고장 밖의 사람들이 들러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어디냐고 물을 때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내가 사는 금촌 마을이라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마을 근처 몇 곳에 돼지, 소, 개를 집단화하고 이를 기업적으로 기르면서 마을 자랑이 사라졌다. 축사의 동물들이 매일 쏟아내는 생 오줌, 생 똥에서 발생하는 냄새는 마을을 덮고 집 안에까지 퍼지고 있다. 냄새는 구역질을 일으키고 머리를 아프게도 한다. 불규칙하게 들리는 개 짖는 소리와 모기떼처럼 날아드는 파리는 계절에 관계가 없다.

오줌과 똥의 일부가 봇도랑이나 하천으로 흐르고 있다. 흐르면서 스며든 오물은 흙을 더럽힌다. 이 때문에 마을 간이 상수도의 물에도 의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삶은 10여 년 전부터 지치고 쇠약해졌다. 논과 밭과 집의 값은 이웃 마을에 비해 떨어졌다. 외지인들은 마을 주변에 있는 축사를 혐오시설로 보고 이 지역을 무조건 외면하거나 좌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냄새 고통, 파리 떼 고통, 개 짓는 소리 고통, 식수가 더러움에 물드는 고통, 땅값 집값 떨어진 고통 등 겪지 않아도 될 이런 고통을 매일 겪으면서도 다수의 주민이 소수의 축산업자들 앞에서 터놓고 싫은 말 하기 드문 게 실제의 사정이다.

지난해 연말에 주민 총회가 열렸다. 마을의 축산환경개선 문제를 드러내 놓고 의논하는 기회였다. 동물사육 때문에 피폐해진 마을 환경문제를 개선하자는 데 참석 주민 모두가 뜻을 같이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추진위원 모임을 구성하고 매월 마을 회관에 모인다.

추진위원들은 축산사업자와 같이 축사 현장을 돌아본다. 냄새 나고 오물로 질퍽한 축사, 똥 처리장, 오줌 처리장, 정화조, 퇴비 적치장, 오수처리배관, 축사현장과 접해 있는 언덕과 하천바닥 등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 시설개선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요청하여 출장 나온 관계공무원들과 추진위원이 마을 회관에 함께 모여 토론하는 기회도 있었다. 이분들에게 환경기준에 적합한 엄격한 단속을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축사시설 개선이나 환경 개선은 미미한 실정이다. 연말까지 시설 개선, 냄새 개선, 개 짖는 소리 개선, 파리 떼를 개선하지 않으면 축산사업자 등록취소나 축사이전 촉구를 위한 주민 단체행동도 해야겠다.

축산업은 주민 동의를 구한 후 시군이 허가하도록 돼 있다. 동의에 끝까지 반대한 소수의 마을 사람도 있다. 하지만 축산 기업이 마을 인근에 들어오면 마을이 발전한다고 선전하는 잘못된 뀜에 빠져 동의를 해준 이도 있고 그들에게 땅을 비싸게 팔기 위해 동의해준 이도 있으며 어떤 이는 주는 선물에 마음이 약해져 동의해준 이도 있다. 차 떠나고 손 들듯 그때 동의해준 것을 후회하고 있으니 섭섭하고 언짢지만 내가 앞서 나무랄 처지는 아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축산정책은 잘못된 것 같다. 마을 가까이에 흩어져 있는 기업적 축산은 나라가 정해준 지역으로 이전시키고 모으는 정책을 쓰면 좋겠다. 특성이 다른 논공단지가 있듯이 시군에 축산단지를 만들고 그 단지 안에 축사를 옮기도록 꾀어서 이끌면 분뇨로 인한 환경 피해도 막을 수 있고 구제역 같은 질병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축산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바뀌기 전이라도 고향의 생활 환경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이원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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