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목소리의 소유자'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 '동양인 최초 세계 5대 오페라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프리마돈나' '동양인 최초 이탈리아 황금기러기상 수상' '세계 최초 비이탈리아인으로 국제 푸치니상 수상'.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48)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다. 더 이상 수식어를 붙이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녀가 크리스마스 이브 대구를 찾는다. 대구 공연에 앞서 이달 7일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진 조수미를 만났다.
인터뷰는 공연 직전에 이뤄졌다. 공연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는 것은 사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자칫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고 목소리가 악기인 소프라노에게 말을 많이 시키는 것도 실례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 인터뷰 시간을 조율했지만 워낙 바쁜 몸이라 부득이하게 공연 직전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예술가곡 들고 왔어요"
오랫동안 세계 정상을 지켜온 대가의 첫 인상은 참 소탈했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달려간 기자에게 인터뷰 시간을 좀 더 할당해 주기 위해 분장을 하면서 인터뷰를 하자고 제의할 정도였다.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분장을 하면서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그녀를 만나 가장 먼저 이번 투어에 대해 물었다. "4일 경주, 7일 부산, 22일 안동, 24일 대구로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사실 올봄 투어 공연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올 3월 독일 낭만파 예술가곡으로 된 앨범을 출시한 뒤 고양, 인천 등을 돌며 공연을 하다 해외공연 일정 때문에 잠시 중단한 뒤 다시 투어를 시작했어요."
조수미는 세계 유수의 극장과 도시를 다니며 공연을 한다. 그런 그녀가 한국에 오면 유독 지방 공연을 많이 다닌다. "지방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요. 서울에서 하는 공연과 또 다른 느낌을 받아요. 제게 보내주는 각별한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더 열심히 지방을 찾아다니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지방은 대도시에 비해 문화적 혜택을 덜 받고 있어요. 지방 공연을 기피하는 다른 예술가들에게 경각심도 주고 싶어요."
이번 투어 공연에서 선보이는 독일 낭만파 예술가곡은 최고의 기교를 가진 콜로라투라의 여왕 조수미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또 다른 예술 세계의 확장이다. 독일 낭만파 예술가곡은 기교뿐 아니라 정서적 완성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 목소리는 화려하기 때문에 극적 표현에 잘 어울려요. 성격도 적극적이어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데 독일 낭만파 예술가곡은 절제되고 정제된 느낌을 살려야 해요. 독일 낭만파 예술가곡을 부르면서 나 자신을 정돈하고 외향보다는 내향을 추구하는 음악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어요."
◆음악 인생 25년의 회고
1986년 작은 체구를 가진 한국 출신의 소프라노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 섰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역을 맡은 그녀는 데뷔 무대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바로 조수미였다. 그녀가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을 맞는다. 올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이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는 25주년 이야기로 넘어갔다.
사반세기 동안 조수미가 걸어온 길은 대단하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25년을 돌아본 소감에 대해 "세계를 다니면서 견문도 많이 넓혔지만 아직도 서투른 것이 많아요. 커리어 측면에서 보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많아요. 특히 가족들이 많이 희생을 했어요. 한국 국적을 고집하며 세계 무대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악을 쓰며 살아온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는 추가 질문에 "좀 더 놀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놀고 싶어도 잘 놀지도 못해요. 젊은 시절 좀 놀아 둘 걸 잘못했어요"라며 웃었다.
조수미의 25년 음악 인생은 치열한 투쟁과 영광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 데뷔 무대일까 아니면 세계적인 지휘자 폰 카라얀과의 만남일까. 그녀의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지난해 운동을 하다 발목을 삐끗했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치료를 제때 못해 악화됐어요. 6개월 동안 이동할 때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공연을 포기할 수 없어 붕대를 감고 무대에 올랐어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 같아요."
한길을 오랫동안 가다 보면 흔히 마주치는 것이 슬럼프다. 음악과 연애에 빠진 조수미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슬럼프라고 생각해요. 힘든 일이 있어야 기쁜 일도 있듯이 예술가들에게 슬럼프는 예술이 심오해지는 자양분 역할을 해요.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슬럼프가 사라져요."
◆25주년 기념 사업
조수미는 내년에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 중이다. "내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25주년 기념음반 녹음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25년 동안 세계 각국을 다니며 공연해 온 집시 같은 삶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세계 각국의 음악과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망라된 대작 음반을 만들 계획이에요."
기념 앨범 제작과 함께 월드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캐나다·러시아·유럽·일본·중국·방콕 등을 돌며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에요. 한국에서는 5월과 9월 두 차례 공연이 계획돼 있어요. 5월 공연 테마는 바로크 음악이고 9월 공연은 야외 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될 것 같아요." 조수미는 또 "욕심이 많아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프랑스가곡, 러시아가곡, 한국의 창작음악,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음악, 뮤직테라피까지 다양한 앨범을 내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현재 그리고 내일의 삶
조수미는 자기관리를 잘하는 소프라노로도 유명하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고 음악적 완성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그녀의 긴 호흡에는 동료 성악가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듀엣으로 노래를 하면 파트너가 조수미의 손을 꼬집고 심지어 발로 차기도 한다. 호흡이 달리니 빨리 노래를 끊어 달라고 보내는 신호다.
"특별한 관리법은 없어요. 평소 많이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팔자가 거세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사주를 본 어머님께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어요. 공연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공부를 하거나 요리를 해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조깅, 웨이트트레이닝 등 운동도 많이 해요."
올 8월 별세한 고 앙드레 김과 조수미는 각별한 사이였다. 조수미는 20년 동안 앙드레 김이 만들어 준 무대 의상을 입고 공연을 했다. 앙드레 김의 작고 소식을 접하고 누구보다 슬퍼했던 사람이 조수미다. "얼마 전 유엔에서 공연할 때 앙드레 김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옷을 입었어요. 선생님이 가신 후 무대 의상 제작을 위해 재능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과 새로 일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을 기억하기 위해 앞으로도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옷은 계속 입을 거예요."
조수미는 한 인터뷰에서 50세 즈음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이미 1994년 자서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펴낸 바 있다. "1983년 한국을 떠난 이후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어요. 이탈리아 집에 가득 쌓여 있는 일기장은 제가 걸어온 음악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이에요. 가끔 꺼내 읽어 보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바쁘게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돼요. 자서전을 출간한 뒤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어 책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조수미는 아직 미혼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 연인과 헤어진 뒤 음악과 연애를 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만인의 연인에서 한 사람의 연인으로 정착할 생각은 없을까.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한 사람의 연인으로 살기보다는 음악과의 열애를 더 즐기고 싶어요. 저는 평소 제 심장이 뛰고 있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지금은 부산에서 심장이 뛰고 있으니 부산이 집이고 크리스마스 이브쯤에는 대구가 집이 될 거예요."
예술가에게 은퇴 후 모습은 현재의 모습만큼 중요하다. 10년 또는 20년 후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조수미는 "음악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기쁘지만 유네스코 평화예술인, 월드컵 홍보대사 등으로 임명돼 사회에 기여한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음악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인으로 남고 싶어요. 지금은 해외 공연이 많아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국에 들어와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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