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인터넷 강국의 허상-중독된 사회

벌써 삼 주째 월요일 상담 시간에 바람을 맞았다. 예약된 내담자의 이름과 얼굴이 스쳐 지나가면서 은근한 걱정과 짜증이 뒤섞인다. 전화는 당연히 받지 않는다. 후다닥 문자를 친다.

이십대 중반의 어여쁜 아가씨가 게임만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고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보낸다. 아마도 체력이 다 소진하고 나면, 마지못해 게임을 그만두고 뭔가를 먹고 깊은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우울한 문자를 내게 날릴 것이다.

"선생님,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퇴직을 앞둔 어느 공직자의 얘기는 더 심각하다. 며느리에게 온라인 게임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며느리가 자신에게 무기를 선물해 줬노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며느리와 함께 밤늦도록 한 팀이 되어 죽이고 파괴하는 게임을 한다. 아침 출근도 제때 못 할 뿐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와 생활에서는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와 아내를 견디지 못해 밖으로 나돈다. 시아버지의 공허감을 달래주는 데는 성공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인터넷 중독에 이른 두 사람으로 인해 가정이 해체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인터넷 중독은 상담에서 너무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그 심각성을 느끼는 내담자는 거의 없다. 보호자 역시 인터넷 중독, 특히 온라인 게임의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넷 중독의 문제는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중독으로 분류될 만한 인구 집단들이 늘어가고 있다.

인터넷 논객을 자처하는 사람들, 익명으로 수많은 댓글을 달며 숨어서 공격하는 사람들,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의 세계에서 잔혹한 장면을 즐기는 사람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일명 야동을 통해서만 자극되는 사람들, 어떤 부류이든 인터넷이 제공하는 편리함과 높은 자극 수준에 중독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인터넷 중독이라 의식하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하다.

인터넷 중독을 확인해볼 수 있는 간편 척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 어디서나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많아 자가 측정해볼 수 있다. 중독이란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기제란 걸 이해한다면, 어려서부터 그 싹수를 잘라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밤 열 시 이후 미성년자 인터넷 사용 금지법이 제정될 모양이다. 이 법의 효력이 청소년들의 심야 인터넷 사용에 실제적인 제한을 가져오게 될지는 다소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법령을 제정하여 강제적인 제재를 취해야 할 만큼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에 직면한 셈이다.

김지애<인지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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